오작교의 행보/내가 한일 할일

착한식당이라는데...청도일원 답사

吳鵲橋 2016. 3. 12. 11:06



착한식당이라는데...


2013년 12월 14일 서일회란 모임에서 청도 착한식당 청국장을 먹어보기로 하였다.
9시 50분에 지하철 상인역 롯테백화점 정문앞에서 만나기로 하였기에 가서 기다리다가 유웅길,신성옥 셋이만 청도를 향하여 갔다 각북재를 올라가서 차 한 잔 마시고 내려가면서 찾다가 지나처서 덕산초등학교까지 갔다가 전화를 하여서 위치를 확인하고 되돌아 올라서 찾아갔으나 반가이 맞이하지 않았다.
우리가 첫손님이었데도 나물을 다듬다가 입으로만 방에 들어가시요 하였다.
들어가보니 어듭컴컴하여서 내가 양지바른 쪽도 방이 있기에 거기에 들어가서 앉았더니 주문을 받으로 온 젊은 청년의 인상이 저녁 굶은 시어머니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영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착한식당이라고 하니 식단표를 보고 주문을 하려고 하니 7월 방송에 나올 때는 6000원이었는데 8000원으로 되어있어서 그 사이에 값을 이렇게 올렸나 싶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청국장 세 개하고 동동주 한 되를 시켰다.
나오는 것을 보니 청국장 뚝배기가 조그만한 탕기 만하고 밥도 식었고 반찬도 김치.들깨잎,콩나물, 젓갈 한가지 콩뽁음이 전부였다.
먹어보니 맛도 별로였다.
12시가 넘었는데 손님이라고는 우리뿐이어서 오늘은 토요일이라 복잡하면 어떡하나 하였는데 이외로 조용하였다.
왜 이렇게 조용하냐?고 물었더니 1시가 되면 북적된다가 하였으나 우리가 먹고 나올 때
겨우 5사람이 전부였다.
이렇게 불친절한 집은 시내에서도 잘 없다.
셋이는 나오면서 한 번 모르고 올 집이지 두 번 올 집은 아니다라고 하면서 나왔다.
대구와 경상북도 경계인 헐티재
헐티재의 휴게소
운치가 있고 가격도 헐하였다. 커피 한 잔에 800원 생강차,대추차는 1000원이었다.
한잔식 하고 보니 다탁이 오래되어서 멋을 느낄만하였다.
탁자다리를 몇 곳이나 다른 나무조각을 받치어서 균형을 맞추어놓은 것이 재미있었고 주인 아줌마의 인상도 좋았다.
착한 청국장 식당인 이름이 소나무식당이란 이유가 이 소나무에 있었다.
마침 메주를 쑤어서 매달고 있었다.

청도박물관

12월 14일 영남일보를 보니 청도에 박물관을 개관한다는 기사가 있었다.
소나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딱히 정한 곳이 없어서 박물관을 보러가자고 제의하였더니 찬성하여 이서면 양원리 구 칠곡초등학교(청도박물관)를 찾아갔다.
찾아갔더니 차들이 많아서 못 들어가게 하였는데 들러보니주는 차들은 고급승용차였는데 아마 높은 사람들이 들어가는 모양이었다. 차를 어디 댈까 하다가 몇 대가 들어간 뒤 뜸하기에 몰아갔더니 넣어주었다.
아직 박물관을 개관하지않고 축하공연을 하는 중이었다. 돌아보니 커팅할 테프와 가위가 있는 것을 보니 오픈은 하지 않았는데 기념공연 보고 있을 시간이 없어서 들어가려고 하니 못 들어가게 하는 것을 몇 사람이 들어가는데 따라 들어가서 미리 보았다.
다 보고 나올 때 사람들이 몰려들어와서 겨우 나왔다.
박물관 개관을 한다는 현수막들
어디를 가나 다를 대접하기 위한 아주머니들
오천서당은 가보지 못하였는데 기회가 되면 가보아야겠다.
돌 칼들 오늘 아침 신문에 보니 돌칼중에는 가장 크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발굴 된 가장 큰 돌칼(67Cm)
항아리 받침대를 만들어 놓았는데 그 당시에는 이런 받침대가 없었던 것으로 안다.
그러나 마땅히 놓을 방법이 없으니 이렇게 만들어 놓은 모양이다.
한 바퀴 돌아나오면서 다 아주머니들에게 차를 한 잔 마실수 있다면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하였더니 처음에는 바깥에 나가서 마시라고 하더니 차를 봉사하는 분들은 마음씨가 차처럼 향기롭다고 칭찬을 하였더니 차를 마시고 가란다.
무슨차냐고 하였더니 우리나라에서 나는 녹차잎을 발효한 보이차라고 하였다.

청도향교와 석빙고

청도박물관을 보다가 석빙고 사진을 본 신선생이 개석 없는 석빙고를 보고싶다고 하여 보러갔다.
청도지리를 잘 모르는 내가 유선생보고 화양읍에 있으니 그리로 가자고 하였는데 가다가 보니 향교가 먼저 나와서 향교부터 보았다.
청도향교는 좌향우묘로 건물배치가 되었다.
일반적으로는 전학후묘인데
四柱門
위에서 본 모양
석빙고에 들어가서 촬영한 모양

청도 읍성과 도주관

석빙고 바로 옆의 읍성을 보고 도주관 척화비를 보고 대구로 오면서 유호연지를 보고 저녁은 강원도집에 와서 닭구이를 먹었다.
읍성도 20년전에는 그냥 밭둑으로 있었는데 이제는 이렇게 모습을 갖추었다.
고증에 의하여 복원하였는지는 모르겠다.
척화비
도주관
청도의 옛 이름이 도주였다.
유호연지의 정자
반보기의 유래가 여기서 되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저녁을 먹은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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