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15일 10시에 지난 5월 31일 내시경을 한 결과를 보러 갔더니 다행히 선종이라고 하면서 파티마에 가서 잘라내라고 하였다.
아마 너무 커서 출혈이 심할 것 같으면 입원을 하여야 한다고 소견서와 CD를 써주었는데 집에 와서 보니 정말 엉망이었다. 어떻게 저 지경이 되도록
물론 내시경 하는 날의 이야기는 종양을 6개나 제거하고 제거하지 못한 것을 컴퓨터의 사진을 보니 너무나 커서 당황해서 제대로 듣지도 못하고 15일을 마음 조리면서 기다렸다. 그 당시 의사의 말로는 6-7CM가 되는데 다행한 것은 물렁물렁해서 암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오늘 집에 와서 CD컴에 넣고 복사해서 보니 정말 엉망이었다.
동생 탁이의 죽음으로 내가 조금 일찍 내시경을 하게 된 것이다.
동생 죽음이 아니었다면 금년 말이나 내시경을 할 생각이었다.
탁이는 살아서 내가 22살 때 폐결핵 진단을 받고 안동 보건소 앞에서 두 다리 죽 펴고 죽음을 걱정할 때 형님 요즈음은 의술이 발달되어 고칠 수 있습니다라고 용기를 주더니
(사실 그 당시에는 폐결핵을 망국병이라고 하여서 거의 죽었다. 후진국이라 약도 잘 없었고 못 먹었고)
그러더니 이번에는 죽음으로 내 병을 조기 진단하게 만들어 주어 두 번이나 형을 살린 것이다.
아마 너무 커서 출혈이 심할 것 같으면 입원을 하여야 한다고 소견서와 CD를 써주었는데 집에 와서 보니 정말 엉망이었다. 어떻게 저 지경이 되도록
물론 내시경 하는 날의 이야기는 종양을 6개나 제거하고 제거하지 못한 것을 컴퓨터의 사진을 보니 너무나 커서 당황해서 제대로 듣지도 못하고 15일을 마음 조리면서 기다렸다. 그 당시 의사의 말로는 6-7CM가 되는데 다행한 것은 물렁물렁해서 암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오늘 집에 와서 CD컴에 넣고 복사해서 보니 정말 엉망이었다.
동생 탁이의 죽음으로 내가 조금 일찍 내시경을 하게 된 것이다.
동생 죽음이 아니었다면 금년 말이나 내시경을 할 생각이었다.
탁이는 살아서 내가 22살 때 폐결핵 진단을 받고 안동 보건소 앞에서 두 다리 죽 펴고 죽음을 걱정할 때 형님 요즈음은 의술이 발달되어 고칠 수 있습니다라고 용기를 주더니
(사실 그 당시에는 폐결핵을 망국병이라고 하여서 거의 죽었다. 후진국이라 약도 잘 없었고 못 먹었고)
그러더니 이번에는 죽음으로 내 병을 조기 진단하게 만들어 주어 두 번이나 형을 살린 것이다.
CD에는 대장의 사진이 79장이나 있었는데 그 중 몇 장만
폴립인가 종양인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렇게 클 수가
이러니 변을 보면 손가락 굵기 밖에 안 되었던 모양이다.
이러니 변을 보면 손가락 굵기 밖에 안 되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