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암서원 사적 242호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 필암리 소재
선조 23년(1590)에 하서 김인후(1510∼1560)를 추모하기 위해서 그의 고향인
기산리에 세워졌다.
1597년 정유재란으로 불타 없어졌으나 인조 24년(1624)에 다시 지었다. 현종 3년(1662)에
1597년 정유재란으로 불타 없어졌으나 인조 24년(1624)에 다시 지었다. 현종 3년(1662)에
임금께서 ‘필암서원’이라고 쓴 현판을 직접 내려보내 주셨으며, 1672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공부하는 곳을 앞쪽에, 제사지내는 곳을 뒤쪽에 배치한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로서 휴식처가 되는 곽연루를 시작으로 수업을 받는 청절당, 그 뒤에 학생들이 생활하는 공간인 동재와 서재가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그 북쪽으로는 문과 담으로 별도의 공간을 만들어 사당을 두고 제사를 지냈다.
청절당의 처마밑에는 윤봉구가 쓴 ‘필암서원’현판이 걸려있고, 대청마루에는 동춘 송준길이 쓴 현판이 걸려있다. 또한 곽연루의 현판은 우암 송시열이 쓴 것이다. 사당의 동쪽에는 경장각이 있는데, 보물로 지정된 서책이나 문서 등이 보관되어 있다. 이들 자료는 주로 18세기∼20세기초부터 전래된 것으로서, 당시 지방교육과 제도 및 사회·경제상, 그리고 학자들의 생활상 등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공부하는 곳을 앞쪽에, 제사지내는 곳을 뒤쪽에 배치한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로서 휴식처가 되는 곽연루를 시작으로 수업을 받는 청절당, 그 뒤에 학생들이 생활하는 공간인 동재와 서재가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그 북쪽으로는 문과 담으로 별도의 공간을 만들어 사당을 두고 제사를 지냈다.
청절당의 처마밑에는 윤봉구가 쓴 ‘필암서원’현판이 걸려있고, 대청마루에는 동춘 송준길이 쓴 현판이 걸려있다. 또한 곽연루의 현판은 우암 송시열이 쓴 것이다. 사당의 동쪽에는 경장각이 있는데, 보물로 지정된 서책이나 문서 등이 보관되어 있다. 이들 자료는 주로 18세기∼20세기초부터 전래된 것으로서, 당시 지방교육과 제도 및 사회·경제상, 그리고 학자들의 생활상 등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 金麟厚 , 1510 - 1560 (중종 5년- 명종 15년 )
조선 중기 문인,서예가로 자는 厚之, 호는 河西 담재 본관은 울산 성균관에 들어가
이황과 함께 학문을 닦고 1540년 (중종 35년)문과에 급제하여 承文院正字에 등용
되었으며
이어 박사, 설서 부수찬을 지냈다. 1543년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玉果縣令으로 나갔다 명종이 즉위하고 1545년 을사사화가 일어난 뒤에 病을 이유로 고향에 돌아가 성리학 연구에 정진하였고 誠敬의 실천을 목표로 하였다. 천문,지리,의약,산수, 율력에도 정통하였고 시문을 잘 지었으며 글씨는 行,草에 뛰어났다. 저서에 河西集, 周易觀象篇, 西銘四天圖,
百聯抄解 등이 있다. 시호는 文正이다.
★. 서원이나 향교를 상징하는 은행나무와 홍살문 뒤로 루문인 곽연루가 보인다.
(카메라 올림프스 뮤 830)
★. 외삼문을 겸한 루문
현판 글씨는 우암 송시열의 글씨라고 한다.
현판 글씨는 우암 송시열의 글씨라고 한다.
★.곽연루의 내부
새로 100억을 들여 성역화하면서 내부는 엉망으로 되어 있었다.
큰 것만 좋아하지 말고 있는 것을 잘 보전하는 것이 진정 문화재를 사랑하는 길이
아닐까?
새로 100억을 들여 성역화하면서 내부는 엉망으로 되어 있었다.
큰 것만 좋아하지 말고 있는 것을 잘 보전하는 것이 진정 문화재를 사랑하는 길이
아닐까?
★.필암서원 현판 ( 윤봉구 글씨)
현종 3년 1662년에 하사
흰 바탕에 검은 글씨가 하사 현판임을 한 눈에 알아보게 한다.
(도산서원, 옥산서원도 흰 바탕에 검은 글씨이다.)
11년 전에 왔을 때는 하사현판이라 함부로 쳐다 보지 마라고 그물이 쳐저 있었으나 지금은 그물이 없어졌다.
현종 3년 1662년에 하사
흰 바탕에 검은 글씨가 하사 현판임을 한 눈에 알아보게 한다.
(도산서원, 옥산서원도 흰 바탕에 검은 글씨이다.)
11년 전에 왔을 때는 하사현판이라 함부로 쳐다 보지 마라고 그물이 쳐저 있었으나 지금은 그물이 없어졌다.
★. 필암서원의 현판이 있는 강당 전경
★. 강당의 내부 현판 (송준길의 글씨)
★. 敬藏閣
이름이 특이하다. 다른 서원에 보면 '장경각인'데 여기는 '경장각'이다.
인종이 하사한 묵죽도의 판각이 보관 되어 있으며 정조의 어필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글씨의 색깔은 일반 현판과 같은 흰색이다.
어필은 흰바탕에 검은 색이나 금분으로 써 진 것이 일반적이다.
이름이 특이하다. 다른 서원에 보면 '장경각인'데 여기는 '경장각'이다.
인종이 하사한 묵죽도의 판각이 보관 되어 있으며 정조의 어필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글씨의 색깔은 일반 현판과 같은 흰색이다.
어필은 흰바탕에 검은 색이나 금분으로 써 진 것이 일반적이다.
★. 경장각 전졍
팔작지붕이면서 주심포(기둥위에만 포작이 있는)집이다.
(백양사의 극락전과는 반대이다.극락전은 맞배지붕이면서 다포였다.)
팔작지붕이면서 주심포(기둥위에만 포작이 있는)집이다.
(백양사의 극락전과는 반대이다.극락전은 맞배지붕이면서 다포였다.)
★. 인종이 하사한 묵죽도의 판각 (퍼옴)
★. 서원내의 비
★. 사당 祐東祠 ( 주자글씨를 집자한 것이라고 함)
김인후선생과 양자징공의 位牌를 모심
김인후선생과 양자징공의 位牌를 모심
★. 우동사의 전경
★. 필암서원 주변정비 기념이란 거대한 표지판이 주차장 바로 옆에 세워져있다.
11년전에는 없었던 것이다.
관리인의 말로는 성역화 하는데 100억 이상이 들었다는 것이다.
★, 새로 만든 원진각 (유물 전시관)
★. 원진각 내에 있는 김인후선생의 상
★. 원진각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