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교문화재

덕동문화마을

吳鵲橋 2016. 1. 21. 09:07



덕동문화마을

2008년 8월 4일


★. 덕동 문화마을 문화부 지정 15호
포항시 기북면 오덕 1리에 자리잡은 덕동마을은 포항에서 가장 오래 된 두메 산골에 있으며 여강 이씨가 입항한 이후 지금까지 360여년 동아 가꾸어 놓은 자연과 유적 유물들을 자손 대대로 고스란히 간직해 오고 있다고 한다.
덕동이란 덕이 많다는 뜻이고 문원공 회재 이언적의 동생이신 이언광공의 4대손 사의당 이강이 입향조로서 여강이씨의 집성촌이 되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경주성 탈환 승첩으로 유명한 경주부윤 박의장 (영덕) 공이 이곳 쇠점에서 비격진천뢰를 만들었다고 전해온다.
농포 정문부의 별장이 있엇던 마을이기도 하다.
★. 덕동마을의 입간판
입간판이 있는 숲이 아주 우거져 마을의 분위기를 짐작 할 수 있게 한다.
★. 이 마을의 독특한 문화적 전통과 천혜의 자연조건을 높이 평가받아 1992년
문화부지정 제 15호 문화마을로 지정 경상북도에서는 2001년도에 환경친화마을로
지정하였다고 하며. 그리고 산림청과 생명의 숲에서 공동으로 실시한 제 7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고 한다.
★. 비오톱 조성지
Bio는 살아있는 생물이라는 의미이고
top은 영역, 지역의 의미라고 한다.
두 단어가 결합된 독일어에서 유례 된 용어로 우리말로 고쳐보면
"비교적 밀도가 높은 생태계가 존재하고 정리 된 경관을 가진 장소"라 한다.
★. 두 냇물이 합쳐진다고 합가천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 회정 우물 (바이오톱 내에 있음)
요실금을 낫게 한다는 설명이 있어서 모두가 한 잔씩 마셨다.
★. 바이오 톱 내의 숲
★. 바이오 톰의 연못 (여러가지 생물을 심어놓고 연구한다고 함)
★. 민속 박물관
마을 사람들이 가정마다 한 점씩 모아서 만들었다고 한다. 다른 민속박물관과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톱 크기가 엄청 컸다.
★.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 80호인 애은당
사랑채는 일자형이고 안채는 일반적인 ㅁ자형의 양반가옥으로 아직 초가지붕을
그대로 두고 있었다.
임진왜란때 의병장이던 농포 정문부의 식솔들이 피란와서 살던 집이었다고 함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 81호인 사우당
일자형의 사랑채와 ㅁ자의 안채가 이마을의 민속자료가 거의 모습이 비슷했다.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206호이 여연당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 243호인 용계정
이 마을의 주된 건물이나 아깝게고 수리중이라 사방을 막아 출입을 할 수
없었다.
용계천의 수려한 벼랑 암벽위에다 조선 명종 1년(1546)에 세워진 건물로 임진왜란
때 북평사를 지낸 농포 정문부의 별장이었다고 한다. 그 뒤 1687년 숙종 14년에
개축 하고 그 정각 이름을 사의당이라 했으나 손자인 이시중이 용계정으로
바꾸었다, 용계정은 1778년 현 위치 상단부에 세덕사가 건립되면서 연연루 명흥당,
진덕재, 면수재, 입덕문이 지어져 서원의 면모를 갖추었으나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의 위기를 맞았다. 고종 5년 (1868) 서원 철폐시에 용계정을
세덕사지와 분리하기 위해 밤새도록 담을 쌓아서 세덕사만 철폐되고 용계정은 화를
면하였다고 한다.
용계정이란 현판은 당대의 명필인 지족당 최석신의 글씨이고, 세덕사 현판은
시서화의 대가로 예조판서를 역임한 강세황의 글씨이고 명흥당은 승지 이익회가
연연루는 이조판서 조윤형, 입덕문 현판은 입암인 권신추의 글씨라는데 한 점도 볼
수 없는 아쉬움만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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