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삼년을 다니면서도 하루만 결석을 하여 졸업할 때 정근상을 받았다. 토요일이면 일찍 마치나 기차는 제시간이 되어야 오니
(기차는 토요일이라고 일찍 오지 않음)기차역에 놀다가 어떤 기차라도 오면 타고 내려가다가 다행히 내가 내려야 하는 기차역에 멈추면 내리고 멈추지 않으면 다음 멈출 때까지 가서 놀다가 다시 올라오는 기차를 타고 올라왔다. 때로는 석탄을 실은 뚜껑 없는 기차에 올라타고 가면 흰 교복이 석탄 가루가 묻어서 형편없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면 집에 와서 어머니에게 야단을 맞기도 하였으나 다음번에 또 석탄기차를 타기도 하였다. 우선 시간 보내기가 지루하고 당시는 놀이기구가 거의 없었으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일종의 놀이였다.
심지어 기차선로위에 못이나 긴 철사를 얹어놓았다가 기차가 지나가면 자석이 된다고 그런 장난도 하고 그러다가 집으로 가는 어느 날 한 친구(장대섭)가 운산역에서 빨리 내려서 기차 가는 길 한 참 앞 선로에 긴 철사를 놓다가 기관사에게 발각이 되어 붙잡혀서 다음(단촌)역까지 싣고 가서 내려주었는데 집에 가서 보니 먼저 와 있었다. 우리 마을을 꼭지점으로 하면 두 기차(운산과 단촌)역이 밑변이 되어서 거리가 거의 비슷한데 우리는 여럿이 이야기하면서 갔고 그 친구는 혼자다보니 빠른 걸음으로 왔던 모양이었다.
아침에 학교에 갈 때는 기차역에서 기차가 늦게 오는 날은 점심도시락을 먹고 가기도 하였다. 학교에서는 통학생이라고 하면 지각도 용서를 해주던 시대였다. 그러다가 기차가 들어오면 신호를 해야 하는 신호표시의 철사 줄에 올라앉아서 신호기가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장난도 하면서 자랐다.
어느 가을날에는 구름이 끼어서 시각을 잘 알아볼 수가 없어서 (시계를 가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친구 다섯이 기차를 놓져서 집으로 되돌아가는데 너무 일찍 가면 부모님께 야단맞는다고 놀면서 가다가 과수원에 들려서 각자 주머니에 있는 비상금을 모아서 사과를 사서 먹고 점심도 거기서 먹고 놀다가 집에 가는 기차가 올 때쯤 과수원에서 나와서 통학차를 타고 오는 아이들과 함께 집에 간 적도 있었다. 그것이 딱 한 번 내가 중학교 때 결석한 날이었다.
때로는 낙동강 인도교에 나와서 검문소 (다리마다 차량을 점검하는 장소)에서, 당시는 전시라서 모든 차량을 군인들이 검문하던 시대라 검문소에서는 어떤 차량도 서니까 몰래 뒤로 타고 가다가 내리는 방법으로 공짜 차도 많이 탔단다.
2학년때 늦가을 통학열차에서 내려서 천천히 걸어오다니 앞서 가던 친구들이 모두 뒤로 물러섰다. 왜 그러냐고 하니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가리키는 곳을 보니 커다란 뱀(흑질백장)이 지나간다. 가방을 옆의 친구에게 던지다시피 맡기고 뱀의 뒤를 따라갔다. 뱀은 철길을 넘어 벼를 벤 논으로 가고 있었다. 이제 겨울잠을 자려고 산으로 올라가는 중이었던 모양이다. 쫓아가서 꼬리 쪽을 발로 누르고 발 한 쪽으로 나온 꼬리 쪽을 잡아서 발을 살짝 들면서 슬며시 당기어 내니 내 키와 비슷하였다. 뱀을 묶을 줄이 없어서 그냥 팔에 칭칭 감아서 집까지 들고 갔다.
형님이 몸이 허약해서 뱀으로 보신을 해 주려고...
당시에는 특별히 보신할 것도 없었고 어른들 말로 흑질백장이라는 구렁이가 몸에 좋다는 말은 늘 하시는 것을 들어왔기에 형님 생각을 해서 잡은 것이다. 구렁이는 독이 없기 때문에 물려도 상처만 나지 별 탈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이 말리는 것을 뿌리치고 잡았던 것이다.
뱀은 두 번째로 잡은 것이다. 초여름 모내기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학교에 가는 길이었는데 나 혼자 따웃재를 넘어서 작은 원골이라는 곳을 지나는데 논에 기다란 막대기가 보여서 누가 지게작지를 잊어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하였는데 곁에 가서 보니 흑질백장이었다. 신을 벗고 무논에 들어가서 잡아놓으니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칡을 걷어서 껍질을 벗겨 끈을 만들어서 뱀목을 묶어서 큰 나무의 높은 가지에 묶어두었다. 집에 갈 때 가져가려고...
뱀은 먹지 않아도 죽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고도 기차를 탈 수 있었다. 이날은 종일 공부가 되지 않았었다. 묶어놓은 뱀이 혹시라도 빠져나가지는 않았을까?. 누가 보고 가져가지는 않았을까를 생각하니 공부가 되지 않았다. 드디어 학교를 마치고 통학차를 타고 운산역에 내려서 30여분 걸어서 원골들에 와서 산기슭에 묶어두었던 뱀을 보니 그대로 살아서 꿈틀대고 있었다. 역시 책가방은 친구에게 주고 팔에 감아서 집에 가지고 왔었다. 이 뱀은 형님이 회로도 먹고 고아서도 먹었다. 어쨌든 형님을 위하는 일이라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였던 것 같다.
그래도 형님 몸은 나아지지를 않고 늘 소화가 안 된다고 소-다를 먹기도 하고 무를 깎아 먹기도 하였다. 형님은 고등학교 2학년 때 휴학계를 내고 휴학을 하였으나 결국 복학을 하지 않았었다. 건강을 핑계로...
그러나 내 어린 눈에는 공부가 하기 싫어서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공부를 하기 싫다고 본 것은 이른 봄에 통학을 같이 하면서 너무 천천히 가기에 이러다가 기차 놓치겠다고 빨리 가자고 한 것이 화근이었다.
형님은 일부러 기차를 놓치려고 한 것 같았다. 그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어두웠는데 형님이 바깥에 좀 나오라고 하여 나갔더니 엎드려뻗쳐 하기에 시키는 대로 담벽에 기대서 엎드려뻗쳐를 하였더니 지게작대기로 엉덩이를 내리쳤다. 나도 모르는 사이 아야 하는 소리가 밖으로 나왔다. 물론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하였지만 몽둥이가 엉덩이에 닿는 순간 반사적으로 나온 소리였다. 아버지가 아야 하는 소리를 듣고 바깥에 나오셔서 보니 형님이 동생을 두들겨 패고 있으니 아버지가 속이 상하였다. 형님이 또 아버지에게 야단을 맞게 되었다.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서야 조용해졌다. 이유는 동생이 형님에게 지시를 하였다는 것이다. 당시는 맏형님은 부모와 같다고 하여 거역을 할 수 없었던 시대였기에 형님 말이면 무조건 들었어야 할 때였다. 이런 일이 있고도 형님을 나름대로 공경하였으나 나중에 아버지 어머니가 편찮아서 눕게 되어서 아들 딸들이 다 모였는데 혐님만 오시지 않아서 형제들이 다 모였으니 오십시오라는 전화를 하여서 형님과 거리가 멀어졌었다.
'오작교의 행보 > 나는 누구인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9)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0) | 2024.09.07 |
---|---|
8) 사범(고등)학교 생활 (21) | 2024.08.31 |
중학교 생활 3학년 (0) | 2024.08.18 |
중학교 생활 2학년 (0) | 2024.08.17 |
7) 중학교 생활 1학년 (0) | 2024.08.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