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옷과 신발에 대해서
나는 초등학교(그 때는 공립국민학교)에 입학하기까지 신을 신어보지 못한 것 같다. 할아버지가 여름에는 발 시럽나?
하셨고 겨울에는 뱀이 없으니 괜찮다 하셨다. 여름에는 응당 더우니 맨발로 다녀도 아무런 불편을 못 느꼈는데 겨울에는 매우 추워서 밖에는 잘 나가지 않았고 소변은 방안에 있는 요강에서 보았고 대변을 보러 가면 맨발로 갔다가 마루 귀퉁이에 놓아둔 걸레에 발을 닦고 방으로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변소(통시,지금의 화장실)에는 휴지도 없었고 화장실은 바깥이 다 보이는 것이었으며 바람이 불면 추워서도 빨리 볼일을 보아야했다.
화장실에는 짚단이 놓여있었다. 볼일을 본 후 짚단에 있는 짚으로 뒤를 닦아야 했다. 짚이 거칠어서 궁둥이가 아팠다. 그러니 바르게 닦일 수도 없었으나 흉내를 내는 것이었다.
설(새해 음력 1월 1일)이 되어야 짚신을 얻어 신었던 것이다. 가끔 할아버지가 짚신 삼는 옆에서 나도 따라서 해 보았지만 그것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손자에게도 신기지 않는 신발은 그래도 겨울 내내 삼으셨다.
시장에 내다 팔아서 생필품이라도 사야 하니까
옷은 내의라는 것은 그 때는 말도 들어보지 못했고 한복 바지,저고리를 여름에는 삼베로 만든 것이었으니 요즈음으로 치면 최고급 옷이지만 그 때는 집집마다 삼을 직접 심고 길러서 베고 삶고 벗기고 째고 삼고 날고 베 짜고 옷 만드는 것 까지 직접 다 하였고 그 방법 밖에는 없었다.
겨울에는 무명으로 만든 옷이었다. 물론 목화를 심어서 목화 따고 씨아로 씨앗을 골라내고 활로 타고(부드럽게 하는 방법) 고치를 만들고 실을 잣고 꾸리에 감고 날고 베를 짜는 과정을 전부 직접 한 것이었다. 베에 물들이는 것도 물감을 사 오셔서 집에서 물들였다. 색깔이라야 검정색 한가지였다. 이렇게 만든 옷이니 바람이 불면 옷 섶이 휙 날려서 그냥 맨살이 나왔으니 얼마나 추웠겠나? 옷 섶 양쪽을 모아서 빈침으로 고정시켜서 입었다. 그래도 내의가 없으니 바람이 불면 그냥 살갗에 닿아서 매우 추웠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그렇게 자랐다. 그렇게 자라서인지 매우 강한 체질이 된 것이다.
우리 할아버지는 정말 강한 분이었다. 그렇게 삼은 신발을 시장에 내다 파셨고 솟갑(솔가지-소나무 가지 처서 말린 것)장사도 하셨다. 소에 솟갑을 싣고 시장에 가는 날이면 나도 따라 나셨다. 왜냐하면 할아버지는 솟갑을 지게에 지셨으니 소 몰기가 불편하여서 소를 내가 몰고 따라 나선다
우리 집인 삼밭골서 운산시장까지는 두 고개를 넘어서 8KM...
그 먼 시장까지
1시간 반이 넘게 소를 몰고 가면 엿 한 가락을 사 주셨기 때문이다 그 엿 한 가락 얻어먹으려고 먼 길을 멀다 않고 따라나선 것이다. 솟갑은 겨울에 해서 나뭇가리를 만들었다가 겨울 내내 부엌에 불 때고 남은 것을 이듬해에 판 것 같다. 요즈음은 돈 준다 해도 그 먼 길을 걸어 다니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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