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유년시절
우리가 겨우 밥을 먹고 살 때이니 엄마 젖도 나오지 않아서 아마 미음(쌀을 끓인 물)으로 살린 아이이니 무슨 먹을 것이나 제대로 먹고 자랐겠나...
그러나 그 이후는 잘 자랐던 모양이다.
우리 마을에 있는 학교(집에서 1Km정도)는 규모가 작아서 2부 수업을 하였다. 형님이 1학년 때 오후 수업이면 아침부터 우리 집보다 더 시골에 있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길목이라 우리 집 바로 앞 논에서 짚으로 만든 공을 가지고 축구를 하면서 놀았다. 겨울에는 농작물을 심지 않아서 논이 운동장이 되었던 것이다. 어른들은 논을 밟아놓으면 땅이 굳어져서 쟁기질할 때 힘든다고 야단을 하여도 잠시 피하였다가 어른들이 들로 일하러 가면 다시 축구를 하였다.때로는 자치기도 하고...
그러다가 초여름이 되면 개구리를 잡아서 뒷다리만 껍질을 벗겨서 할머니가 작은 솥에 삶아서 주면 아이들이 먹는 것을 나도 한 마리 얻어먹기도 하면서 자랐었다. 당시의 간식으로는 제격이었다.
여름부터 가을 까지는 냇가에 나가서 물고기 몇 마리를 잡으면 감나무 잎이나 호박잎에 싸서 부엌에서 구워 먹기도 하였다.
농사일은 잘 못했다.
어릴 때(학교 입학 전) 소풀(꼴)(이른 봄에 들판에 돋는 새싹)을 하러 가면 늘 다래끼(가는 나무줄기를 엮어서 만든, 물건 담는 기구) 반을 채우지 못하였다. 형님은 가득 차도록 해오지만, 그래서 어머니에게 늘 꾸중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왜 너는 반 밖에 하지 못 하였느냐?고 어머니가 물으시면
형님이 다 하여버려서 그렇다고 핑계를 대곤 하였다. 대신 글은 형님보다 더 잘 읽은 것 같다. 시골의 사랑방에서 천자문을 방문 열어놓고 읽던 기억이 난다. 꿇어앉아서 하늘 천, 땅 지를 배울 때는 내가 더 빨리 외운 것 같다.
수학(그 때는 셈본이라고 했다.)도 꾀 잘 한 것 같다.
고모님(대구에 계시다가 3년 전에 돌아가심)이 일본학교 다닐 때 얼마 더하기 얼마를 내었는데 형님보다 내가 먼저 알아맞힌 것 같다. 물론 학교 들기 전이어서 고모로부터 칭찬을 받은 것 같다. 가을이면 벼를 추수해서 탈곡할 때 볏짚을 탈곡기 뒤로 던져 놓으면 그것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는데 게을러서, 변소 뒤에 숨어서 쉬다가 할아버지에게 지게작대기로 머리를 두들겨 맞아서 머리에 혹이 두 개 난 일이 있었다. 어머니는 그것이 못 마땅하여 늘 그 이야기를 하셨다. 아마 7-8세 되었을 때 인 것 같다. 지금도 내 머리를 보면 가운데가 오목하고 양쪽이 튀어 올라있다. 그 때 맞아서 그렇다고 어머님이 늘 말씀하셨다. 그러나 설마 맞아서 그렇겠나만은 어머님은 내가 너무 어려서 안 스러웠던 모양이다. 늦은 봄이 되면 새벽에는 마을 앞에 여자 분들이 줄을 지어 계곡으로 들어가고 어둠이 깔릴 때면 보퉁이 보퉁이를 이고 지고 내려갔다 산나물이다. 마중 간다고 남자들이 지게를 가지고 산으로 가서 나물보퉁이를 받아가지고 내려오는 길이다. 물론 우리 엄마도 나물 하러 가셨다. 그렇게 나물을 해 오면서 보퉁이에 꼭 길 다란 막대가 몇 개씩 꽂혀 있었다. 송구(송기)라는 것인데 앳된 소나무 가지를 꺾어서 겉껍질은 버리고 속껍질을 먹는 것이었다. 자식들 주기 위해서 모두들 몇 개씩 꺾어오는 것이었다. 당시로는 인기 있는 간식이었다.
그것 받아먹으려고 나물 보퉁이 마중을 가곤 했는데 사실은 송구만 받아왔지 나물은 역시 엄마가 이고 왔다. 조금 커서 지게를 질수 있게 되었을 때는 조금 도움이 되었겠지
이렇게 해 온 나물은 말려서 겨울에 나물죽을 쑤어 먹었다.
어린이들은 감꽃을 주우러 다녔다. 감꽃을 주어서 실에 꿰어서 말리기도 하고 그냥 먹기도 하고 밥 위에 쪄서 먹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감이 생기면 감을 주어서 아주 작아서 도토리만 할 때도 물에 담가 놓았다가 먹었다. 산에 가서는 빼기라고 하는 풀뿌리를 케어 먹고 잔디라는 풀은 지근지근 씹어서 물을 빨아먹고, 새바우(하수오)라는 뿌리는 아주 귀했는데 캐면 아주 좋아했지 뿌리가 조금 굵기도 하고 굵어보아야 고구마 아주 잔 것 만했지 이렇게 산이나 들이나 돌아다니면서 잘 자랐다.
놀이라는 것은 팽이를 돌리고 겨울이면 얼음 지치고 논에서 축구도 하고 공은 짚으로 만들었다. (볏짚을 돌돌 뭉쳐서 새끼로 꽁꽁 묶었다고 할까 여러번 새끼줄을 돌린 것이다.) 냇가에서는 가재도 잡고 새우도 잡고 어쩌다가 미꾸라지라도 한 마리 잡으면 굵은소금 한 두 개 넣고 호박잎에 싸서 부엌에 묻어 두면 잘 익었는데 아주 맛이 있었다.
이렇게 천방지축으로 잘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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