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작교의 행보/내가 한일 할일

천안홍경사 갈기비

吳鵲橋 2016. 3. 12. 10:26



천안홍경사 갈기비


봉선홍경사지
충청남도 천안시 성환읍 대흥리에 있었던 사찰로 弘慶寺 弘慶院이라고 한다.
1021년 (현종 22년)에 형긍이 왕명을 받아 여행자의 보호 및 편의를 위하여 창건하였다.수행을 위한 장소로보다 원의 성격이 많았던 사찰이다.
비각
귀부
철망을 하여서 촬영하기가 매우 불편하였다.
비신의 옆에도 장식을 하여놓았다.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다.
천안삼거리는 인연이 있는 곳이라 꼭 보고 싶었는데
(1970년 겨울 방학 때 서울을 올라가서 동생2과 고종사촌동생을 데리고 KBS에서 하는 100만인의 퀴즈에 나갔다가 가족팀이라고 우대를 받아서 두 번째로 무대에 올라가게 되었는데 문제가
영호남에서 과거시험을 보러 상경을 하다가 꼭 들르는 삼갈레길의 주막에서 묵어가는 곳이 정도만 듣고 동생이 벨을 눌러 천안이라고 하여 틀려서 기회가 상대팀으로 갔을 때 문제는 계속 되어 떡이 유명한 곳이라는 것 까지 하였을 때 상대팀이 병점이라고 하여서 떨어진 경험이 있다. 상대팀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하니 병점에서 왔다고 하였다)
천안삼거리는 행사관계로 주차를 할 수 없어서 차안에서 촬영한 능수버들
천안삼거리는 영남과 호남에서 서울로 가는 길목으로 그 중심에 삼거리가 있는데 여러가지 전설중 하나를 소개하면
고려말 조선초에 유봉서라는 홀아비가 능수라는 어린 외동딸을 데리고 곤궁하게 살았는데 능수는 나이는 어렸지만 탁월한 재능과 보기 드문 미색을 갖춘 도데 효성이 지극하여 동리 사람들의 총애를 받았다. 왜구들이 침입해오자 듀봉서는 군인으로 징발되어 전장으로 떠나게 되엇다. 홀아비는 하는 수 없이 능소를 삼거리 주막에 맡기고 버들가지를 꺾어 꽂아놓고는 변방으로 갔다.
세월이 흘러 전라도 고부 선비 박현수가 과거보러 가는 길에 삼거리 주막에 묵으면서 절세미인 능수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린다. 과거에 급제한 박현수는 제일 먼저 천안삼거리 주막으로 달려가 능수를 얼싸안고 춤을 추는 때에 수자리로 떠났던 홀아비 유봉서도 제대를 해서 돌아와 보니 떠날 때 심었던 버들이 큰 나무가 되어 가지를 휘휘 늘어뜨리고 잘 자라 있었다. 이 때부터 사람들은 능수버들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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