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작교의 행보/내가 한일 할일

베트남의 하롱베이

吳鵲橋 2016. 2. 27. 11:48



하롱베이에서


왜 하노이에서 자고 하노이를 보고 다음 날 하롱베이를 보면 이렇게 힘들지 않을텐데 12월 31일 새벽 1시 50분 비행기이니 하롱베이에서 하노이로 가는 시간을 저녁 시간으로 하면 시간도 잘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저녁먹고 공항에서 시벽 1시 45분까지 기다리려면 지루하 텐데 하는 생각이 계속 머리속을 맴돌았다. 어쨌든 아침에 일어나서 계획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선택관광: 80불
베트남에서 베트남만의 문화,음식을 소개합니다.
수상마을에서 회감(다금바리)과 해산물, 베트남에서 전통 교통수단이었던 씨클로, 전통의 식단으로 구며진 고급레스토랑센을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라고 되어 있었다. 어제 길을 잃고 헤멘 것에 대한 사과 한 마디 없이 이 무슨 못 된 짓인가 싶어서 아침을 먹고 프론트에 기다리니 한국에서 간 안내원이 보이기에 이 내용을 보였더니 자기도 몰랐다면서 없었던 것으로 해 달라는 것이다.
그렇게 알고 버스를 타고 하롱베이 3000개의 섬을 보기위해 떠났다. 11시 20분에 선착장에 도착해서 12시에 배를 타고 섬 가까이 가서 바다 구경 섬구경을 하니 섬인지 산인지 모를 정도로 섬과 섬이 붙어 있었다. 물은 아주 더러웠다. 1사쯤 되니 그 놈의 다금바리 이야기가 나왔다. 내 생갹으로는 절대 하고 싶지 않았지만 집사람이 제발 별나게 하지 말고 다른 사람 하는대로 하라고 해서 한 사람이 30불씩을 더 내고 먹었다. 별로 맛도 없고 찔기기만 하였다. 배 위에서 점심과 한국 소주 한 잔씩을 하고 오후에는 어느 섬에 닿아서 전망대에 올라가서 구경을 하는 대 나는 중간에 있는 전망대 까지만 올라갔다. 거기서도 다 보였다. 다리 아프게 갈 필요가 있을 까 싶었다. 안내원 세 사람은 한 사람도 올라가지 않고 바닷가의 백사장에 남아 있었다 .그러다가 사고라도 나면 누가 책임지려는지? 모래도 인공으로 갔다 놓은 것이라 한다. 비취파라솔 대신 풀로 엮어 만든 파라솔이 몇 개 놓여 있었다.
17시에 배에서 내려서 발맛사지(말이 발맛사지이지 전신 맛사지였다.) 받고 석식은 한식을 하고 새로운 호텔에 돌아오니 20시 20분이었다. 시간이 좀 일러서 사워하고 재래시장을 구경하니 거의 목각이고 아오자이 옷이었다. 술집도 있었으나 사지도 먹지도 않고 한 시간쯤 구경하고 돌아와서 잤다.
하롱베이에서 탄 배 위에서
석회동굴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뒤로 보이는 봉우리가 산이 아니고 섬이다.
배위에 식사를 하기 위하여 물고기를 고르는 중 갑오징어가 이뻐서
인공으로 만든 백사장인데 뒤로 보이는 풀로 만든 파라속들
백사장에서 바다쪽을 향하여
변기가 조금 특이했다. 검은선으로 동그라미가 된 것 (마이크처럼 생긴 것)이 비대기이고 빨간선 안의 것이 물 내린는 단추이다. 변기위의 빨간 줄 달린 것은 전화기이다. 전화기가 달린 것은 좋은 데 비대기를 사용해보니 불편하고 물 내리는 손잡이가 없어 어떻게 물을 내리나 싶어서 여기저기를 살펴보니 변기위에 단추가 있었다. 눌러보니 물이 내려갔다.
호텔 로비에서 손님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악사들이 연주를 해주었다. 물론 대한민국 사람인 줄 알고 아리랑을 연주해주었다.



여행 마지막 날


30일 아침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면서 전화요금을 계산하니 2불이었다. 하노이로 가는 중에 곰쓸개 파는 곳에 들렸다. 그 때에야 우리를 이리저리 끌고 다닌 이유를 알게 되었다. 우리관광객의 편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안내원이 주머니 챙기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것을 곰 쓸개 파는 곳이 하롱베이에서 하노이로 가는 길목에 있었다. 역시 또 한국사람이 나와서 설명을 하는 데 모든 병을 고칠 듯이 이야기 하였다. 내야 이미 어떤 것이라도 사지 않기로 마음 먹었기에 구경만 하고 있었다. 30분을 설명하고 곰 쓸개즙 1시시가 5만원이라는 설명과 함께 살 사람이 있으면 즉석에서 살아있는 곰을 마취시켜놓고 초음파사진으로 들여다보면서 채취하기 때문에 진짜라는 것을 믿을 수 있다고 하니 몇 몇 사람이 산다는 의사 표시와 함께 어느 한 방으로 가보니 커다란 곰을 마취 시켜서 메고 왔다. 초음파기로 이리저리 보고 주사기를 찔러서 쓸개즙을 뽑는 것이다. 한 버 뽑는데 70-80시시 나온다고 한다. 모두가 둘러서서 구경하고 8시시가 한 달분인데 특별히 10시시에 40만원을 받겠다고 하니 몇 분이 다 샀다. 역시 관광객이 다 타고 안내원은 마지막으로 사무실에 들렸다가 나왔다. 아마 마진을 챙기고 나오는 모양이다.하노의 대장금이라는 한식집에 도착하니 13시 40분이었다. 도착하니 안내원의 부인이 택시를 대기시켜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무엇을 하는가 싶어서 인사를 하고 보니 안내원이 가방 하나를 건넸다. 저것이 무엇일까 오늘 저녁이면 집에 갈텐데 그 때 가져 가도 되는 데 왜 중간에서 건넬까? 점심을 먹으면서도 곧장 머리속에는 그 가방속에 무엇이 들었길래 저렇게 택시 까지 대기시켜놓고 받아가야 할 중요한 것일까?를 생각해보았다. 한 참을 생각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돈 가방이었다. 집사람은 통장으로 입급하면 되는데 왜 현금을 가방에 넣어서 다닐까봐 하였다. 그렇기도 하지만 통장에 넣으면 근거가 남는 것이다. 현금으로 받으면 아무런 근거가 남지않는다. 거기다가 가지고 다니다 보면 잃을 염려가 있으니 나오라 해서 택시까지 대기시켜놓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이 아니라면 집이 아주 가깝다고 했는데 걸어서 가도 될 텐데 말이다. 어쨌든 한식으로 점심을 먹고 호지명 기념관과 묘소가 있는 곳으로 갔다. 호지명의 시체는 박재를 해서 모셔놓았는데 군인 두사람이 마네킹같이 지키고 있었다. 그저 건물만 보고 집무실과 살림집을 둘러보았다. 살림집은 우리내 보통사람보다 못했다. 세칸이었는데 한 칸은 침실 한 칸은 서실 한 칸은 부엌이었다. 침실은 침대게 우리나라 초석같은 것을 깔아놓았다. 1식에 3찬 이상을 못하게 했다니 위대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국민이 잘 살게 되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베트남 국민들이 받들어 보실 수 밖에 없었다. 우리나라 대통령이나 정치인들이 본 좀 받았으면 하였다.
한기둥 사원을 보니 기둥 하나에 집을 지었다. 특이했다.
다음 문학사원이라는 곳을 갔더니 우리나라 향교였다. 여기서도 악사들이 연주를 하는데 아리랑을 연주해주고 1달라씩을 요구하였다. 이것을 끝으로 관람은 마치고 또 다시 가게로 갔다. 집사람에게 가짜 보석 목걸이 하나 7불에 샀다. 선물이라고는 이것 하나 산 것이었다. 내가 생각해보아도 내가 너무 짜지 않은가 싶었다.
이제 공항으로 가는데 그 놈의 오토바이는 얼마나 많은지 집사람 표현으로는 개미새끼떼 같다고 했다. 정말 개미새깨떼 같았다. 교톻규칙도 우리와는 달라서 -표시가 있는 곳에는 좌회전, 직진, 유턴을 동시에 하는 데 정신이 없었다. 오트바이와 곧 부딫힐 것 같은데 한 사람도 부딪히지 않고 잘 도 빠져 나갔다.
공항 가까운 식당에서 저녁을 한식으로 먹고 (현지식으로 한 번 먹고 싶었으나 현지식은 한 번도 없었다.)
20시부터 수상인형극을 45분간 보고 또 발맛사지를 하였다. 집사람이 어제 1불을 팁으로 주니 마음이 조마조마하더라고 2불을 요구했다. 어제 남자들은 모두 1불을 주었는데 (이것도 내가 안내원에게 누구는 많이 주고 누구는 적게 주면 욕 먹으니 통일하자고 해서 안내원이 1불을 주라고 했는데도 여자분들은 2불을 준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다.)
남자들은 오늘도 어제의 여자들의 말을 듣고 2불을 주려고 하는 사람이 있어도 1불로 통일했다. 이런 것을 보면 여자가 돈을 더 잘 쓰는 모양이다.
21시에 발맛사지 마치고 공항에 도착하니 23시 40분이었다. 수속을 마치니 또 좌석이 억망이었다. 내가 두 번이나 비행기 좌석이 뒤죽박죽이 되어서 하노이에서 한국 가는 비행기는 오래 타니까 좌석을 가족별로 배정해달라고 특별히 부탁하니 안내원 말이 전세기이기에 올 때와 똑 같은 좌석이라는 것이란다. 그래서 안심했더니 억망이었다. 이 안내원은 입만 벌리면 거짓말이다. 호지명 기념관에서 다른 관광객을 모두 해설서를 가지고 있어서 우리도 그것 하나씩 다라고 했더니 현지 안내원 핑게를 대고 공항에 가서 주겠다고 하더니 주지않았고 하롱베이에서 하노이로 올 때 휴게소에서 내리면 사탕수수 과자를 사서 주겠다고 하더니 사지도 않았고 내가 공항 가까이 가게에 들렸을 때 미워서 그 이야기 했더니 여기서는 꼭 사주겠다고 했는데 버스에서 먹어보니 석유냄새가 나서 먹지도 못해서 본인 보고 먹어보라고 했더니 먹어보고 버리라고 했다. 우리 수상인형극 볼 때 보이지 않아서 옆 팀 안내원에거 물으니 과자 바꾸려 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서 보니 아마 아까웠던지 오는데 보니 과자는 가져오지 않았다. 아마 돈으로 받아온 모양이다. 어쨌던 여행에 기분은 잡치게 만든 사람은 현지 안내원들이었다. 내가 속으로 이러니 관광발전이 잘 안 되는 것 같았다.
공항에서 쭈그리고 기다리다가 비행기를 타는데 주머니에 것을 바구니에 내어 놓으라 해서 호두 두알(내가 손가락 운동하는 기구로 20년전부터 늘 가지고 다닌다.) 을 내어놓았더니 검색원이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폭탄이 아닌가 생각하는지 호두라서 어이가 없어서인지는 모르겠다.
31일 새벽 2시 출항하여 아침 7시 대구 공항을 도착하는 것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후기: 반입금지물품인 곰쓸개는 시키는대로(현지 안내원이 살 때는 아무 말 없다가 공항에 도착하니 큰 가방에 넣고 입국할 때 아무것도 없다고  하라고 시켰다.) 없다고 해서 통과가 되었는데 점심먹고 다시 가서 산 상황버섯은 량이 많아서 4킬로그램만 가져오고 나머지는 압수 당했다는 것이다.
자기네 이익만을 위하고 입국할 때의 주의 말은 가르쳐주지 않는 모양이다. 거기다가 반입금지 물품마져 팔아치우는  안내원들이 안타깝다.       

박재 된 호지명이 들어 있다는 건물 군인들이 마네킹처럼 서서 지키고 있었다.
외국 국빈을 맞이한다는 건물
군집대나무라고 하는 데 열매인지 꽃인지 주렁주렁 달렸다.
역시 호지명 기념관안의 숲길

불목이라고 하는 나무인데 뿌리가 위로 자란다. 나무밑의 작은 모양들이 부처모양으로 자라는 나무 뿌리이다.
나무 이름은 무르겠다. 열매가 이것은 작지만 큰 것은 호박만했다. 작은 것은 우리나라 배 같았다.
기둥 하나에 지은 집
문학사원 (우리나라 향교 같은 곳)
기념관에서는 악사들이 연주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가니 아리랑을 연주해주고 1달라씩을 요구했다. 이 모금이 수리하는데 사용하는 비용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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