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작교의 행보/내가 한일 할일

재천 영월을 다녀오다.

吳鵲橋 2016. 2. 26. 21:53



재천 영월을 다녀오다.


2007년 12월 2일 4시 30분에 일어나서 운동 약간 하고 아침 먹고 준비를 마치니 6시 10분 집을 출발해서 큰고개 5거리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대구역에 내리니 6시 35분 밖에 되지않았다.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어서 무엇 하는가 싶어서 가까이 가 보았더니 노인들이 줄을 서서 아침식사를 하려고 한다. 아마 식사하기도 힘든 노인들인가 보다. 그런데 그런 노인들이 왜 이리 많을까?  나는 거기에 비하면 잘 사는 것이다. 오늘 도 이와 같이 문화재탐방을 갈 수 있을 만큼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그 자체만해도 행복한 것이다.
천천히 신일해피트리 아파트 건설현장입구에 도착하니 6시 45분이었으나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한 참을 기다리니 갑교 웅길 송교가 오고 조금 있으니 이한방교수 내외가 왔다. 조금 있으니 찬하 인죽이 시간이 다 되어도 오지않아 전화를 하니 시각을 잘 못 알고 있었다. 독촉을 해서 온 것이 7시 20분 차 세대에 나누어탔다. 나는 방율(한의원 원장)의 에쿠스에 웅길과 송교가 타고 남재천 인터체인지에 내리니 서울에서 이인히 가족과 재천의 체욱씨가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이인희씨가 달걀을 삶아 오셔서 한 개씩 먹고 있는 사이 포항의 류우영씨와 사촌의 한국씨 내외와 안동 김주영씨가 오고 조금 있으니 서울의 류세원씨와 류세정 일행이 와서 차 7대로 출발을 했다. 처음에 간 것이 청풍호의 문화재 (안동댐을 할 때 수몰 된 문화재를 옮겨 놓듯이)였다. 층주댐을 할 때 수몰 될 문화재를 한 곳에 모아 놓은 곳이다. 한벽루란 루각과 유물관 고주택등을 보고 아래로 내려가서 옥순봉(대나무와 같이 생긴 바위)과 구담봉(거위와 같이 생긴 바위)을 보고 사인암 (우탁이 붙인 이름)을 보고 그 앞에서 갑교가 점심을 해 와서 닭개장을 데우는 동안 강 건너 가서 보니 조그만 안내판이 있었는데 삼성각에 대한 해설판이었다. 나는 그 해설판이 사인암에 대한 해설판인줄 알고 강건거 갔는데 비가 슬슬 뿌려서 야외에서 식사를 할 수도 없고 날씨도 춥고 해서 이럴 때는 사 먹는 것이 더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남의 집(식당을 하지 않는 식당의 마루)에서 식탁을 펴고 돛자리는 차에 실려있는대로 내어서 깔고 하여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식사전에 이 교수가 맥주를 한 잔 주셔서 날씨 추운데 속이라도 데우자면서 두 잔을 거푸 마시고 조금 있으니 체욱씨가 차를 가지고 소주를 사오셨다. 안주는 포항의 우영씨가 과메기를 제법 많이 가져오셨고 후식으로 사과는 사촌 한국씨가 한 상자를 가져오셨다. 갑교는 안동식해를 해와서 날씨는 춥기나 말기나 푸짐하게 먹고 영월로 가서 장릉을 보고 단종이 사약을 받았다는 관풍헌을 찾는데 한 참을 걸렸다. 대개의 사람들은 단종이 청령포에서 죽은 줄 알고 있었다. 관풍헌은 나도 처음인데 비를 맞으면서 겨우 찾아서 가니 정침에는 약사전이란 현판이 붙어 있고 우익사에 관풍헌이란 현판이 붙어 있는 객사였다. 다시 청령포로 가니 이미 배표를 팔지않아 의림지로 갔으나 날이 어두어 잘 보이지 않았으나 공어가 유일하게 사는 연못이란 것만 알고 다시 곤드레란 비빕밥집을 찾는 데 길을 잘 못 찾은 친구도 있어서 시간이 더 걸렸다. 차가 7대나 되도 보니 자연히 늦어졌다. 곤드레란 나물 이름인 모양이다. 저녁을 먹고 나니 7시 인사를 보이스크우트 악수로서 하고 다음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 대구에 오니 10시 반 집에 도착하니 11시가 조금 넘었다.

남재천 인터체인지에서 마지막 오시는 분(류세원 서울팀)을 기다리는 중 요금소의 차 빠져 나오는 모습을 쳐다보고 있다.
모두가 만났으니 반가움에 기념사진 한 장 찰깍 총 24명
한벽루 앞에서 탐방회원들이 한 판 찰깍
한벽루에 올라가니 슬립퍼가 놓였고 마루판이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서 신을 벗지않고는 들어갈 수 없었다.
고가의 옛 물건들
1번은 봉새기(봉태기)와 다래끼이고 2번은 도투마리(베를 짤 때 사용하던 물건)
고가의 가마니와 초석자리 칠 때 사용하던 바디
한벽루에서 내려다 본 청풍호(충주호)
사인암(사인은 고려때 벼슬 이름 역동 우탁이 한 벼슬이며 우탁이 여기서 풍류를 읊었다고 붙여진 이름)
역동 우탁의 기적비
비오는 가운데 남의 집 툇마루에서 정성드려 장만해온 음식을 먹는 중(사인암 앞의 어느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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