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작교의 행보/내가 한일 할일

캄보디아 베트남

吳鵲橋 2016. 2. 27. 11:25



캄보디아 베트남 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지난 (2007년)12월 26일 10시에 대구 공항을 출발해서 12월 31일 아침 7시에 도착했다.
하노이는 경유지로 생각했고 안내원도 그렇게 말했다. 사람은 잠간 내렸다가 비행기만 갈아타고 짐은 바로 캄보디아 씨엠립 도착한다고 그러나 하노이에 내리자 (현지시간 12:00) 대구 공항아가씨가 잘못하여 짐을 다시 찾고 사람도 다시 항공표를 끊어야 된다는 것이다. 내리니 비는 처정처정 오는데 영 마음이 안 좋았다. 처음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 짐은 한 시간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아서 안절부절 했다. 안내원 보고 몇 번이나 짐이 어떻게 잘 못 된 것이 아니냐고 물어보았으나 좀 더 기다려보자고 했다. 5사람 짐이 없었다 .그나마 나 혼자가 아니라서 더 기다려보았다. 짐이 나오는 벨트는 아무런 짐도 없는데 자꾸만 돌아가고 있었다. 한 참을 기다리면서 안으로 들여다보니 그 때 짐 실은 차 한대가 오고 있었다. 겨우 찾아서 밖으로 나가면 엠비시 표지판을 든 현지 안내원이 있다고해서 찾아보았으나 잘 보이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둘러보니 안내표지판이 A포용지에 엠비시라고 적은 것을 들고 서있었다. 안내원 보고 물으니 여기에 원래는 밖으로 나오지 않고 대합실에서 기다리다 비행기만 갈아타기로 되어 있었는데 급조해서 그렇게 되었다는 변명을 했다. 외국까지 나와서 어떻게 하나.. 시키는데로 다시 비행기표를 끊고 줄을 서서 캄보디아로 가는 비행기(15:10)로 갈아탔다. 세 시간 10분을 소비했다. 할 말이 없으니 잘못되었다는 말은 하지않고 시간이 충분하다는 말만 되풀이햇다.
하노이 공항에서 비가 오는 데 찍어서 흐릿하다. 날씨는 우리나라 늦은 가을 같아서 영하는 아니라도 춥다.



하노이에서 캄보디아로


간신히 짐을 찾아 붙이고 비행기 탑승권을 받으니 자리가 뒤죽박죽이었다. 나는 12G이고 집사람은 32D였다. 왜 이렇게 되었느냐고 항의하니 급히하다보니 그렇다는 것이다. 두 시간만 가면 되니 떨어져서 가자고 약속하고 탔으나 다른 사람들이 자리 바꾼다고 야단이다. 비행기안을 무슨 버스안 다니듯이 소리지르면서 떠들고 다니면서 자꾸 자는 사람들로 정말 억망이었다. 거기에다가 내 앞에 앉은 사람은 외국인이 옆 자리인데 젊은 한국 여자가 잘 되지도 않는 영어로 시트체인지를 연발하니 노라고 대답했는데 계속 체인지를 연발하다가 외국인이 꿈적도 않으니 제 자리로 돌아가는 웃을수도 울 수도 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15시 10분에 출발하여 17시에 도착하니 아직 해가 있었다. 이번에는 짐이 일찍 나와 공항 밖으로 나오니 대기하고 있던 현지 안내원을 만나서 버스에 몸을 싣고 호텔로 도착했다. 안내원(박진일)의 인상이 아주 차가워보였고 캄보디아사람에게 업신 여기는 말을 하지말아라는 말을 하는데 우리를 무척 업신여기는듯한 인상을 주었다. 캅보디아 말 두 마디( 반갑습니다.-섭서바이, 감사합니다.-어꾼찌란.)가르쳐주고 수고하셨습니다.는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니 대답도 하지 않았다. 집사람이 아마 모르는 모양이다라고 했다. 집사람이 좀처럼 그러지 않는데 이번에는 얼마나 어이가 없어놓으니 그렇게 말했다. 가끔 말을 아무에게나 놓고 무엇을 물으면 대답도 잘 해 주지않았다. 호텔에 도착하니 입구에 불상이 있었다. 이 나라는 80%가 불교를 믿는 나라이다. 호텔은 열대지방답게 방바닥이 마루여서 시원했다. 호텔방에 들어서자 집으로 전화를 하고 싶어서 전화 거는 방법을 물으니 한 통화에 몇 만원 나오니 하지 마라는 것이다. 그래도 해야되겠다고 하니 자기가 슬슬 전화번호를 돌려서 걸어주는 데 잘 왔다는 말만 하고 끊었다. 내가 외국에 전화를 잘 안 하다 보니 전화거는 법을 몰랐던 것이다. 저녁에 가만히 읽어보니 거는 법이 다 있었다. 일단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가는데 일정이 벌써 바뀌었다. 디너쇼가 내일로 되어 있었는데 오늘 한다는 것이다. 뷔페였는데 엄청 큰 식당이었다. 내가 언듯 보아도 천 석은 되는 것 같았다. 몇 석이냐고 물었더니 그것 알아서 무엇 하느냐? 고 대답도 안 해 주었다. 음식 있는 곳으로 가보니 100가지도 넘었다. 4-5가지 담아 가지고 먹으려고 자리에 앉으니 우리와 같이 간 김석희라는 모자의 자리가 없어졌다. 누가 앉은 것이다. 아줌마는 교육 좀 더 받아야겠어요 내 말 안 듣고 자리도 정하지 않고 음식부터 가지고 왔느냐고 질책을 하였다. 아줌마는 내 옆의 자리를 잡아두었는데 다른 사람 (우리일행중 A팀) 앉아버렸다, 그래서 아줌마가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아줌마는 아줌마대로 화가 나서 한 바탕 하였다. 저녁을 먹으면서 가만히 좌석 수를 세어보니 1000석이 넘었다. 크기는 컸다. 저녁 먹으면서 말도 한 마디도 못 알아 듣는 쇼를 보았다. 춤은 그렇다 치고 연극은 전혀 알아보지 못하였으나 재미있게 보았다. 1시간의 쇼를 보고 호텔로 돌아오니 벌써 9시여서 씻고 가져간 소주 한 잔 하고 잤다.
캄보디아 씨엠립 공항 뒤로 보이는 건물이 공항 건물이다. 우리나라 가정집 같아서 신기했다.
옷은 아직 갈아입지 못하고 한국에서 입고 간 그대로이다.
★.저녁을 먹으면서 쇼를 보고 있다.
★.남여간의 사랑의 연기를 하는 것 같은데 내가 사진 기술이 없어서 잘 못 나왔다.
★.씨엠립 엠프레스 호텔 입구 호텔에서 옷을 갈아 입고 저녁 먹으로 가는 길이다.
불교식 조각이 많이 보인다.
★.호텔앞의 불상
불상위에 황금색으로 나사못처럼 만들어 놓은 것이 일산이라고 하는 것인 것 같다.
글로만 읽었지 보기는 처음이다. 이것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닫집이
된 것이다.
길거리에도 가끔 이런 불상을 볼 수 있었다.



캄보디아에서


하룻밤을 호텔에서 자고 조식을 먹은 후 그 유명한 앙콜라왓을 관람하기로 세 팀으로 나누어 떠났다. 나는 B팀(14명)이었다. 왜 이렇게 적은 수를 팀으로 구성하는가 의심이 되었다. 차는 25인승이어서 많은 자리가 비었다. 두 팀으로 나누면 안내원도 한 명 줄일 수 있은데...바이욘사원이란 곳을 먼저 들리면서 내 생각은 완전히 잘 못 되었음을 알았다. 사원 내부를 요리조리 따라다닐려면 여러명을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사원의 넓이가 넓고 골목은 좁아서 잘 못 하면 길을 잃어버릴 것 같았다 이런 사원이 1200개나 된다고 하니 1000년 전에 불란서 파리가 인구 3만일 때 여기는 백만이었다는 말이 실감났다. 그 중에 몇 곳을 본다고 했다. 땅을 파도 돌이 거의 나오지 않고 진흙으로 되어있는 이 곳에 많은 돌은 30Km 떨어진 곳에서 가지고 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원이 허무러져서 그 귀중한 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한국 같으면 아마 돌 하나 하나를 주워서 박물관을 만들었을 것 같다.
어느 노점에 앉아서 코코낫의 즙을 먹고 쪼갈라서 그 안에 붙은 얇은 막을 처음으로 먹어보았다. 아이들이 졸졸 따라다니면서 부채 하나에 천원 한국말로 팔아달라고 한다. 점심은 한식으로 돼지고기를 먹고 한국소주(7불) 한 잔 내가 사서 먹었다. 돼지고기를 보니 술 생각이 나서
점심을 먹으면 오후 3시까지 낮 잠 자는 시간인데 호텔에 가서 자겠습니까? 계속 관람 하겠습니까? 하니 모두 계속 하겠다고 해서 그냥 오후 일정으로 그 유명한 앙콜라왓을 보러갔다. 앙콜라왓이 지명이거니 했는데 사원이름이었다.
우리가 흔히 텔레비젼이나 신문 잡지에 나오는 모앙의 사원인데 가로가 2km 세로가 1.8km 그 둘레에 폭이 200m인 강을 팠다는 것이다. 그 옛날에 무엇으로 어떻게 그 많은 돌을 가져 왔으며 땅 속이 물인데 무거운 건축물을 만들었으며 지반이 튼튼하지 않는 곳에 오늘날까지 기울어지지 않는 이유가 불가사의 하다는 것이다. 내가 보아도 불가사의 했다. 요즈음 만들어라 해도 만들 수 없을 것 같다. 산이 거의 없어서 100m만 올라가도 사방이 다 보인다는 프놈바켕이라는 산에 올라갔는데 거기에도 사원이 있었다. 그 큰 돌들을 산 꼭대기까지 어떻게 운반했는지 정말 궁금했다. 거기서 동양 최대의 호수인 톤레삽을 멀리서 볼 수 있었다. 내려오는 길에는 코끼리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코끼리 택시였다. 곁에서 보니 정말 컸다.
그런데 여기의 특징은 표를 한 장 사서 다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곳에 들르면 표의 한 쪽 귀퉁이를 자른다. 그리고 화장실에 가도 표가 있어야 한단다. 현지 안내원은 표 끊고 화장실 안내하는 것이 전부였다.
저녁은 평양랭면관에서 먹고 북한 아이들의 공연을 보는데 우리와 다른 점은 공연하는 아이들이 바로 식당 종업원이었다. 음식을 나르다가 자기 차례가 되면 옷도 그대로 입고 무대에 올라가서 노래를 부르고 내려와서는 다시 음식 나르고
다른 아가씨가 올라가서 춤을 추고 하는 것이 아주 특이했다. 우리나라 가수보고 음식 나르고 무대에 올라가서 노래 부르라 하면 과연 노래 부를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저녁을 먹고는 전신마사지를 받는 데 2시간이나 걸렸다. 시원하기는 한데 아이들이 좀 불상했다. 나이를 물어보니 25살이고 아이도 둘이나 있다는 것이다. 나올 때 2불을 주고 나왔으나 마음이 찡했다.
바이욘사원: 바이욘이란 왕족이 아닌 사람이 쿠테타를 일으켜 왕이 되어서 그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 세운 사원이라고 한다. 사원 전체를 황금으로 도금 했다니 어마어마했다. 툭툭 튀어 올라 와 있는 것이 사람의 얼굴인데 사면에 조각되어 있었으며 54개라고 한다. 이 옆에는 연 못이 있었는데 물에 비치면 지상에 54 물에 54 108이 되니 불교의 108염주와 관련이 있단다.
안내판이다 안내판의 지붕은 우리나라 갈이나 억새 같은 풀로 되어 있었다.
야자수의 열매이다 나는 야자수의 열매는 야자인 줄 알았는데 코코낫이란다.
캄보디아 상의군인들이었는데 전쟁으로 부상을 입은 사람들인데 한국 사람이 지나가면 아리랑을 연주한다. 외국에서 듣는 아리랑은 감회로웠다.한 참을 듣고 1불씩 주었다.
잡지에 나오는 나무 뿌리가 담장을 덮은 모양, 이 사원은 무너지라고 방치한다고 했다. 19세기 영국식물학자가 식물채집을 하다가 발견했다고 한다.
또 다른 나무 뿌리 이런 곳이 여럿 있었다.
평양랭면관의 아가씨들의 악기 연주
앙콜라왓의 창살 돌로 만들어졌으나 나무로 만든 것처럼 부드러워 보였다.
앙콜라 왓을 배경으로
벽면을 빙 둘러보니 전면에 조각을 해놓았다. 그 많은 조각을 어떻게 했는지?


캄보디아에서 둘 째 날


인공으로 만든 호수를 보러갔다. 가로 8킬로미터 세로 2.2킬러미터라는 세계 최대의 인공호수라는 것이다. 깊이는 상류쪽은 2미터정도란다. 호수 한 가운데 둥그런 섬이 하나 있었으며 그 섬에는 장사하는 사람들이 몇명 있었은데 어린이가 더 많았다. 호수는 사각형이고 섬은 둥그러니 천원지방사상을 믿었는 모양이다. 불교와 도교 유교가 같이 있다고 했으니 그 옛날에는 도교를 믿었는지 모른다. 8시에 배를 타고 들어가서 9시에 나왔다. 그 섬 안에도 사원이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무너졌다. 아이들이 졸졸 따라다니면서 사달라고 졸랐다. 사주면 아줌마 예쁘고, 안 사주면 아줌마 뚱뗑이 하고 달아나기도 했다. 여기서 파인에플을 사서 한 조각씩 먹고 안내원이 아이들을 모아놓고 한국노래를 시키니 학교종, 아리랑. 대한민국, 을 불렀다. 미안해서 전화 걸고 남은 캄보디아 돈을 가장 어린 두 아이에게 주었다.
9시에 섬에서 나와 보석가게로 갔다. 나야 구경만 하였다. 가게에서 지루해서 밖에 나와보니 거의 집집마다 앞에 불상이 있었고 캐나다처럼 도로에서 20미터 이상 떨어져서 집을 지었다. 안내원은 좋은 것이라고 자꾸만 사라는 재촉을 하였다. 다행히 한 분이 120만원 짜리 보석을 사고 또 한 사람 몇 십만원 짜리를 사서 나오자 다시 상황버섯 판매하는 곳으로 이동하면서 상황벗의 좋은 점을 설명하였다. 역시 한국사람이 경영하는데 600년 된 상황벗이라는 것이 입구를 장식하고 있었다. 상황버섯 차 한잔씩을 먹으면서 사장의 설명을 듣는데 모든 병을 다 고친다는 식으로 설명을 하였다. 아토피에 가장 좋다고 하는데 사장의 입술가와 얼굴에 종기 같은 것이 보였다. 속으로 그렇게 좋은 상황버섯을 매일 먹는데 어떻게 저런 일이 있나 하면서 그냥 듣고 있었다. 별로 사는 사람이 없자 안내원이 앞에 나가서 상황 버섯이 좋다는 설명을 부언 했으나 한 사람만 샀다. 상황버섯가게를 나오면서 얼굴색이 확 변했다. 그 전 까지는 가면서 설명을 하면서 자기 말 안 듣고 창 밖을 내다본다고 야단하더니 지나가면서 구경하세요 하고 자리에 앉아버렸다. 점심을 또 한식으로 먹고 동양 제일이라는 호수로 갔으나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렇게 말을 많이 하던 사람이 입을 다물어 버렸다. 호수에서 배 타고 한 시간 정도 돌다가 가게에 들려서 맥주나 음료수 사 먹으라고 했다. 한 사람인가 사 먹고 그냥 한 시간 정도 보냈다. 어떻게 하면 시간이나 보낼까 연구 하는 것 같았다. 오후 두 시쯤 여러가지 물건 파는 가게로 안내했다. 쓸 데 없는 시간을 두 시간쯤 보내고 비행기 시간이 잘 안 맞아서 베트남에 가면 식사 시간이 안 맞을 것 같다고 해가 중천에 있는데 오후 4시 식사를 하고 호텔로 와서 짐 싸고 공항으로 갔다. 비행기 좌석은 올 때 처럼 뒤죽박죽이 되어 있었다.
인공호수에서 (섬으로 가는 배 현지 한국 안내원과 집사람)
섬에 있는 집의 지붕 안쪽 (천장)
지붕은 대개 이렇게 풀로 엮어서 덮어놓았다. 현지 영감과 같이 (나)
우리나라 원두막 같은 곳인데 지붕이 있는 평상이다. 여기서 집사람 어깨에 도마뱀 한 마리가 떨어져서 기겁을 했다.
어린이들이 한 개에 천원 하면서 사람을 조르고 있다.
한국노래를 불리고 줄을 세워서 물건을 한 가지씩 사주고 있다.
상황버섯의 좋은 점을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사장(한국사람)
600년 된 상황버섯 (상당히 컸다. 작은 양동이만 했다.)
상황버섯 가게앞의 사원안에서 밥을 먹고 있는 스님과 현지인들
동양에서 제일 크다는 톤레삽 호수의 배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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