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작교의 행보/내가 한일 할일

문학 자판기

吳鵲橋 2020. 12. 27. 16:16

지난 23일 지하철을 동대구역에 갔더니 문학자판기란 것이 있었다.

별별 자판기가 다 있구나...싶어서

차가 올 시간도 5분정도 남아서 곁에 가서 보턴을 눌리니 시가 적힌 종이가 나왔다.

 

내 옆에 있는 사람   이병율

이 사실을 알기까지 오래 걸렸습니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지 않으면

절대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을요

 

내가 사람으로 행복한 적이 없다면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는 것을요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왜 그 사람이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내가 얼마만큼의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라는 것을요...

 

재미가 있어서 한 장을 더 뽑아보았다.

 

기나긴 복도    김소연

어디가 됐든

영원히 쉬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또 한장을 뽑으니

오후 5시 한강은 불꽃놀이 중              조수경

손끝을 바라보았다. 진실과 거짓을

손끝으로 감각했다는 것

은 봉투의 질감과 무게가 평생 거짓의

감각으로 남을 거라는 걸 알았다.

몸에 더러운 얼룩이 생긴 비분이었다.

 

 

한 장을 뽑아 읽는데 채 1분도 안 걸렸다.

아직 차가 오지 않아서 다시 한 장을 뽑았다.

 

던젠가 머물렀고 어느 틈에 놓쳐버린...      가랑비메이커

 

너무나 사랑해서 삼켰던 말들이

얇은 벽을 만들어 버렸고 옷게만 하고싶어

더 많은 눈물이 되어야만 했던 우리

마침내 뜨겁게 고백했고 결국 무너지

 

여기까지 읽고 나니 차가 들어온다.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한 장을 더 뽑았다.

 

걸어서 환장 속으로       관민지

 

굳이 어딘가로 떠나지 않더라도

한께하는 지금이 실시간으로

과거가 되는 중임을 잊지않으려고 한다.

그게 하필 부모님이니까 더 애틋하게

다짐하게 된다

여기 있는 것 일상에 있는 것

함께 있는 것 지금 있는 것을

그 자체로 새삼스러워하고 감사해야 한다는 것

 

이런 것은 참 좋은 생각인 것 같았다.

불과 5분만에 시 다섯 편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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