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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子의 철학 우화사상

吳鵲橋 2020. 10. 2. 11:49

2020년 10월 2일

老子는 초나라 고현의 여향 곡인리 사람이다.

성은 이씨이고 이름은 耳 자는 伯陽이고 후에 시호는 담이라 하고

주나라 주장실의 史(宗廟에 달린 藏室을 관리하는 관리였다고 한다.

공자가 일찍 노자를 만나 ㅏㄱ르침을 청하였다.

노자는공자의 학문방법과 태도에 대해 엄한 충고를 하였다.

공자는 돌아와 노자를 용에 비유하여

"오늘 내가 노자를 만나보고 나니 용과 같은 인물이라 헤아릴 길이 없었다"

노자의 학문은 재능을 숨기고 이름이 세상에 알리질까 두려워하였다.

가랑이를 벌리고 황새 걸음으로 걷는 자는 오래 걸을 수 없다.

우주의 성좌속에 무엇이 생성하고 있는지를 모르듯이 다른 사람의 마음 속에 모엇이 일고 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저녁이 오는 소리는 바빴던 하루를 마감하는 편안함의 소리이고

새벽이 오는 소리는 새로운 희망을 알리는 이슬같이 맑고 심선하며 흙같이 부드러운 소리입니다.

현대라는 복잡한 시대를 살다 보면 가장 중요하면서 기본적인 것을 잊고 살기가 쉽다.

가장 중요하면서 기본적인 것을 일깨워 주는 것이 老子라고 한다.

노자는 무엇을 하겠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사람은 제 주체성을 잃기 쉽다고 하였다.

자연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 파묻혀 자연과 더불어 사는 자연인이 되기를 바랐다.

인간의 행복은 물질문명의 발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삶 속에서 느기는 것이 만족과 기쁨 속에 있다.

우리고 잊고 살았던 것을 깨닫게 해 주고 지금까지 듣지 못했던 새벽이 오는 소리를 듣게 해 주며 진정한 삶의 방법이

깨닫게 해 준다.

 

2020년 10월 3일

노자의 도가사상은 춘추 전국시대에 걸쳐 형성 발전하였다고 한다.

유가들은 모두 천하를 바로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행동하는 자라고 비난하였고 소극적으로 숨어 사는 인생태도를 신조로 삼고 있었다.

전국시대 초기는 유가와 묵가의 사상이 휩쓸고 있었다.

이 양가는 모두 인간의 이성과 능력을 믿었고  사회정의를 내세워 천하를 바로 잡으려는 정통사상이었다.

그런데 이에 대해 회의를 품고 비판하면서 반정통적인 입장에서 사상을 전개한 사람들을 후세에 도가라고 무르게 되었다.

 

도의 관념은 덕의 관념에서 나왔고 덕의 관념은 하늘의 관념에서 나왔고 하늘의 관념은 하느님의 관념에서 나왔다.

仁은 마음이 直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다.

天을 다만 자연으로 보았다. 하늘과 땅은 仁하지 않다고 하였고 또 하늘은 곧 道라 하였고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

그러므로 노자의 도는 바로 자연인 것이다.

노자는 생명도 물질도 다 道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였다.

그 모든 것 가운데 사람만이 자각하는 존재이다.

가장 뛰어난 知는 悳을 自覺하고 道를 깨닫는 것이다.

無爲란 결토 아무것도 하지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법칙에 대하여 철저히 인식하고 그 인식에 서서 능동적으로 하는 행위를 말한다.  여기에 냉정한 비판정신과 굽힐 줄 모르는 실천 의욕의 통일이 있고 인간의 주체성 확립을 보장하는 인간행위의 극치가 있는 것이다.

나를 이해하는 사람이 적을수록 그만큼 나라는 존재는 귀한 것이다.

그릇된 모든 욕망 재산과 권력과 명예에서 벗어나게 할 때 이상적 사회는 형성된다고 하였다.

 

2020년 10월 4일

道는 길이다.

도란 본래 사람이 걸어다니는 길의 뜻이었다.

만일 길이 없으면 개척할 것이고 좁은 길은 넓힐 것이며 굽은 길은 바르게 터 놓을 것이다.

또 길을 걷는데는 아무렇게나 걷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반드시 법칙이 있다.

첫째 어디로 갈 것이냐? 방향을 정할 것

둘째 일단 방향을 정한 후에는 똑바로 걸을 것

셋째 목표를 향해 쉬지말고 빨리 걸을 것이다.

       방향을 잘못 잡으면 아무리 빨리 갈지라도 가면 갈수록  나중에는 출발점으로 되돌아오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길에는 눈에 보이는 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길도 있다.

발로 걸어가는 길이 아니고 사람의 마음이 걸어가는 일이며 이성이 지향하는 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길이 참다운 또는 영원성이 있는 길일지도 모른다.

 

공자의 도는

말할 수 있는 도요.

들을 수 있는 도요

실천할 수 있는 도이다.

 

노자의 도는

말할 수 없는 도요

들을 수 없는 도요

또는 불가사이의 도다.

말할 수 있는 도는 항구불변의 도가 아니다.

 

공자는 도가 사람과 가까이 있어서 알기 쉽다고 하였는데

노자는 도가 사람과 멀리 있어서 알기 어렵다고 하였다.

공자는 길의 개념을 의식세계로 끌어들여 가치 즉 도덕 법칙화하였고

노자는 이것을 자연세계로 끌고 나아가 존재 즉 자연 볍칙화하였다.

 

사람들이 날이 저물어 캄캄하여지면 사람을 알아볼 수 없어서 그 때에 처음으로 누구누구는 아무개라고 이름을 붙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名이라는 글자를 만들 때에 저녁 夕 아래에 임 口를 붙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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