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교훈.훈화말

老子 2

吳鵲橋 2020. 10. 11. 21:21

2020105

변화하는 현상의 근원은 이다.

아름다움은 언제든지 아름답고 착함은 언제든지 착한 것인 줄로만 안다.

아름다움이 절정에 이르면 도리어 함으로 되고

착함이 절정에 이르면 도리어 착하지 못한 것으로 된다는 것을 모른다.

앞에 선 것은 언제나 앞에 설 수 없다. 더 빠른 것이 앞에 서면 뒤떨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성인은 상대적으로 대립되어 있는 사물 어느 한편에 가까이 하지 않는다.

는 만물을 낳고도 자기의 것으로 생각지도 않고 자기의 힘으로 된 것이라고 믿지도 않고 성공을 하여도 자기의 공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공자와 맹자는 아름다움과 추함 또는 착함과 악함을 절재 불변하는 것으로 보았다.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이지 추함일 수는 없고

착함은 착함이지 악한 것일 수 없다.

그러나 노자는 상대적으로 보았다.

간단히 말하면 긴 것도 없고 짧은 것도 없다는 것이다.

긴 것이 더 긴 것을 만나면 q게 되고 짧은 것이 더 짧은 것을 만나면 길게 된다는 것이다.

하는 것이 없으면서도 하지 않는 것이 없는 것이 생명이다.

 

2020106

유가에서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을 이라고 한다.

그러나 도가에서는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고 하였다.

사람이 어질거나 못났거나 다 상대적인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각자 자기 능력에 따라 일을 할 뿐이다.

능력이 많은 사람은 자연히 일을 많이 하게 되고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자연히 일을 적게 하게 된다.

다만 자기 능력대로 섬심껏 하느냐 안하느냐가 문제다.

재능에만 편중하는 교육은 결과적으로 어린이의 천진난만한 동심을 잃어 버리게 한다. 그리하여 참된 인간교육은 무너지고 인간을 지식의 노예로 만들게 된다.

노자라면 각각 자기 능력대로 열심히 공부하되 남봄다 나을 생각을 하지 말고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보다 낫도록 노력하라...

돈만 있으면 땀 흘리고 일하지 않더라고 가만히 앉아서 잘 입고 잘 먹고 훌륭한 집에서 잘 살 수 있다. 그러나 돈이 없으면 아무리 땀 흘리고 하루종일 일을 하더라도 제 밥벌이를 하기 어렵다.

이것은 돈 있는 사람이 돈 없는 사람의 일하는 힘을 빨아 먹기 때문이다.

 

마음을 비워야 지혜가 생긴다.

아무리 마음에 더러운 욕망이 없다고 할지라도 뱃속에서 쪼르륵 소리가 나면 역시 무엇이라도 훔쳐 먹을 생각이 난다.

백성들이 자기의 능력대로 일을 부지런히 하는데도 먹을 것이 없어서 뱃속에서 쪼르륵 소리가 난다는 것은 백성의 잘못이 아니라 위정자의 잘못이다.

민주주의 사회의 백성들은 지식이 너무 많아서 다스리기 힘들고

독재주의 사회의 백성들은 욕망이 너무 많아서 다스리기 힘든다.

범죄자의 통계를 보면 법률을 아는 지식층이 더 많고 법률을 모르는 농민들이 적다. 그러므로 아는 것이 병이다.

철인정치가의 정치를 노자는 하는 것이 없으면서 하지 않는 것이 없다라고 하였다.

無爲로 정치를 하면 다스려지지 않는 일이 없다고 하였다.

 

2020107

인생을 능숙하게 살기보다는 정직하고 어리석게 사는 편이 좋고

빈틈없이 살기보다는 가끔 실수는 할지라도 차라리 거칠고 순박하게 사는 편이 낫다.

는 한정없이 큰 그릇과 같다.

그 속에 온갖 물건을 다 넣어도 그것을 채울 수가 없다.

온갖 물건이 다 거기서 흘러나오므로 만물의 근원이다.

도는 만물을 포섭하고 맘믈은 도를 내포하고 있으므로 도는 만물을 넘어서 또 만물안에 있는 자다.

우주가 아무리 커도 도 안에 있다.

인간은 본래 안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너무 큰 소리도 듣지 못하고 너무 작은 소리도 듣지 못한다.

너무 밝은 것도 보지 못하고 너무 어두운 것도 보지 못한다.

 

사람은 말이 많으면 많을수록 자주 이치에 궁하게 된다. 도리어 묵묵히 가슴속에 간직하여 두는 것만 못하다.

儒家에서는 雜神과 같이 귀신을 믿지 않으나 돌아가신 선조의 귀신 즉 人鬼와 하늘에 있는 하느님과 땅에 있는 地祉(지지)를 숭배해왔다.

땅은 짐승을 위하여 풀을 낳는 것은 아니지만 짐승은 풀을 먹고

사람을 위하여 개를 낳은 것은 아니지만 사람은 개를 먹는다.

하나의 새로운 학설이 나오면 벡상의 마음을 그만큼 어지럽게 하고 또 하나의 새로운 무기가 나오면 천하를 전쟁의 재앙으로 몰아넣게 된다.

유가에서는 말을 숭상하고 또 말을 잘 한다. 그러므로 공자는

명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불순하고 말이 불순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못한다고 하였다.

장자는 물건을 가지고 희다 검다 하기 전에 먼저 그 근원자인 대양의 빛을 파악해야 한다. 태양의 빛을 반사하면 흰 것이 되고 흡수하면 검은 것이 되기 때문이다.

신비스런 여신은 영원히 존재한다.

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綿綿若存 用之不勤

텅 빈 골짜기와 같은 여신은 죽지않고 만물을 생성해 내므로 이것을 일컬어 신비스런 여신이라고 한다.

유현하고 현묘한 신비로운 여신의 문은 천지 만물의 근원이라고 한다. 신비스런 여신은 처음도 없고 끝도 없고 영원토록 존재하는 듯하다. 천지 만물이 이것을 근원으로 하여 연이어 생성하여도 도무지 고갈할 줄을 모른다.

 

넓고 깊은 골짜기는 본래 그 속이 텅 비어 있다. 그러나 비어있다고 해서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무형한 가 충만해 있다.

노자는 여기서 를 문학적으로 표현하여 谷神이라고 했다. 이것을 현대어로 고치면 生命神이라고 해도 좋다.

이것을 근원으로 삼아 이 텅 빈 골짜기에는 나무가 자라고 꽃이 피고 풀이 나고 새가 울고 나비가 날아온다.

제 생명의 약동에 못 이겨 제 스스로 피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날아오기도 한다.

노자는 야ᄆᆞᆯ로 만물을 생성하는 근원이며 영원불멸의 생성 능력이라고 보았다.

 

2020108

하늘은 영원하고 땅은 언제까지나 존재한다

자기자신은 뒤로 물러서고 남을 앞세우러 하므로 도리어 남보다 앞서게 된다.

공자는 자기가 잘 되기 위하여 남을 내세운다.(己欲達而立人)

목적은 자기에게 있고 다만 자기가 잘 되기 위한 수단으로 남을 내세우는 것이다.

노자는 자기자신을 뛰어넘으므로 자신이 현존한다고 하였다.

자기자신과 도덕을 초월함으로써 도를 이루고 도를 이룸으로 둘 다 살린다고 하였다.

 

성인은 남과 다투지 않는다.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

물은 모든 만물을 잘 자라게 하지만 높고 깨끄한 곳에 있으려고 다른 물건과 다투지 않는다.항상 사람들이 비천하고 더럽다고 싫어하는 곳에 스며든다. 그래서 이러한 물의 성질은 와 비슷하다.

성인은 오직 남보다 낫겠다고 다투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인은 무슨 일을 하든지 잘못이 없게 된다.

성인은 아무데서나 함부로 말을 하지 않을지언정 한 번 말을 하면 맞지않는 법이 없다.

가소롭게도 인간은 자기자신읜 악은 보지 못하고서 남의 악만 피하려고 한다. 자기자신의 악은 피할 수 있지만 남의 악은 피할 수 없다.

즐거움을 찾아 헤멜 필요도 없다. 괴로움만 버리면 저절로 즐거워질 것이다.

물건을 가득차게 하는 것은 전혀 가지지 않는 것만 못하다.

칼을 예리하게 갈면 오랫동안 보존할 수 없다.

부귀한 생활을 하면서 남에게 교만하면 스스로 허물을 남기는 것이다.

신경을 지나치게 쓰다보면 반드시 인심을 잃어 결국에는 자기자신이 위태롭게 되는 것이다.

도둑을 맞지 않으려면 처움부터 물건을 갖고 있지않는거싱 상책이다. 도둑이 아무리 도둑질을 잘 한다고 하더라도 없는 물건을 도둑질해 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꽃은 필 때 피고 떨어질 때 떨어져야 좋은 열매를 맺는다.

 

2020109

는 만물을 낳고 기른다. 만물을 생성하게 하여도 내 것이라 주장하지 않는다. 일을 하고도 공을 바라지 않는다. 우두머리이면서도 혼자 주장하여 처리하지 않는다. 이것을 신비스런 이라 한다.

이 세상에 아들 딸이 없는 아버지는 있지만 아버지 없는 아들 딸은 없다.

 

모든 것의 폐단이 되는 지배욕과 소유욕이 있는 한 인류사회에는 착취와 약탈과 전쟁이 있을 뿐 평화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지배욕과 소유욕은 다 인위적인 것이지 자연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물은 즐 에너지의 소재를 모른다. 이것은 마치 물고기가 물 속에서 나서 물 속에서 살다가 물 속에서 죽으면서도 물이 무엇인지 인식하지 못하고 또 물고기가 물이 있어야만 산다는 물의 공덕을 모르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물건이 속에서 살면서도 기의 덕을 모르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물건이 속에서 살면서도 기의 덕을 모르는 덕을 신비로운 덕 즉 현덕이라고 노자는 말한다.

 

물은 그릇에 따라 모나고 둥글어진다.

재물은 본래 살림하기 위하여 자연히 생긴 것인데 사람들은 너무 지나치게 얻기 어려운 재물을 탐내다가 그만 해야 할 일을 못하게 된다.

이렇게 때문에 도를 터득한 성인은 실속있게 배를 채우고 부질없이 겉 모양을 좋아하는 눈을 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욕망은 다 버리고 도를 취한다.

 

聖人은 실속있게 배를 채우고 보는 것만 위주하는 눈치례를 하지 않는다. 바꾸어 말하면 먹기 좋은 열매와 보기 좋은 꽃이 있을 때에 노자에게 어느 것을 선택하겠느냐고 물으면 꽃을 버리고 열매를 취한다.

빵도 긴요한 것이고 자유도 좋은 것이지만은 둘 다 못 얻을 경우에는 빵을 취할 것이다.

공자와 맹자는 을 위하여서는 몸을 죽이고 를 위하여서는 을 버리라고 했지만 노자는 을 위하여서는 .를 버리라고 할 것이다.

 

20201010

사람이 총애와 굴욕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러나 총애를 받는다고 기뻐하지 말고 걱정스러워 놀라는 듯이 하라 또 굴용글 받는다고 부끄러워하지 말고 좋아서 놀라는 듯이 하라 또 큰 환란이 온다고 피하려 하지 말고 자기 몸같이 귀중히 여겨라.

제몸을 천하같이 귀중히 여기는 사람에게는 천하를 줄 수 있고 제몸을 천하같이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천하를 맡길 수 있다.

지금 내가 총애를 받는다는 것은 내일에 가서는 장차 치욕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미리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와 반대로 내가 어떤 사람에게 치욕을 당하는 일이 있다고 할지라도 영원히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즐겁고 재미있는 일은 그 뒤에 괴롭고 걱정되는 일이 꼬리를 몰고 온다.

환란도 내게 달린 것이고 행복도 내게 달린 것이다.

내 몸 하나 없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괴로울 것도 없고 그렇게 즐거울 것도 없다. 다시 말하면 행복이니 불행이니 하는 것이 다 내 몸 하나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이 조그만 내 몸 하나를 초월하면 따라서 행복과 불행 심지어는 죽고 사는 문제까지도 초월하여 노자가 말하는 와 더불어 같이 사는 높고 크고 편안한 내 몸이 될 것이다.

 

는 형태가 없으므로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도는 소리가 없으므로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 도는 모습이 없으므로 만져 보아도 느껴지지 않는다.

 

20201011

욕심을 내지 않으므로 항상 낡은 것을 아끼고 새로 이루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새로운 것은 반드시 낡아지기 때문이다.

생명이 없는 물건은 살 수도 없고 또 죽을 수도 없다.

 

가장 뛰어난 임금은 무위자연의 도로 나라를 다스리기 때문에 백성들이 그가 존새하는 줄을 모른다.

그 다음 뛰어난 임금은 덕으로 나라를 다스리기 때문에 백성들이 그를 사모하여 예찬한다.

그보다 못한 임금은 으로 나라를 다스리기 때문에 백성들이 그를 무서워하거나 업수이 여긴다.

 

해가 떠 있는 낮에도 별과 달이 없으랴만은 그 빛이 다 햇빛에 휩쓸려 광채를 나타내지 못한다. 그러나 캄캄한 밤이 되어 햇빛이 없을 때는 별빛이 현저하다.

 

가시덤불 속에 피어 있는 꽃은 비록 그렇게 아름답지 못한 것이라도 유난히 사람의 눈에 띠게 되는 것이다.

 

공자는 일을 하는데는 싫어하지 않고 사람을 가르치는데는 게으름을 피우지 않을 뿐이다.

안다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이 바르게 아는 것이다.

옳은 것을 옳다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 하는 것이 올바른 이다.

내가 하고 싶지 않는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마라.

 

공자는 몸을 죽이고라도 을 이룩하라 (殺身成仁)

을 버리고라도 를 취하라 (捨生取義)

그러나 노자는 사람은 자연히 낳아서 자연히 살다가 자연히 죽을 것이지 부질없이 인위적인 가치를 위하여 존재적인 자기의 귀한 몸과 생을 버릴 필요는 없다고 하였다.

 

노자가 무욕을 주장하였다고 하여

목이 말라도 물을 마시지 말고 배가 고파도 밥을 먹지 말고 추워도 옷을 입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추우면 옷을 입으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성이다라고 하였다.

다만 갈증이 없는데도 물 한 모금 더 마리려고 하고 배가 불렀는데도 밥 한 술 더 먹으려 하고 추위를 면했는데도 옷 한 벌을 더 해 두려고 하는 것은 사욕이고 또 부자연한 것이다.

모든 인위적인 행위를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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