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왕조
서기전 221년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자 고통 받던 연나라 망명객
서기전 194년 위만에게 쫓겨난 고조선의 준왕이 이끌고 온 유민이 세웠다. 국호를 신라라고 확정한 것은 지증왕 4년 503년후의 일이었다.
1대 박혁거세 거서간, 거실한, 불구내, 알지거서간
양산 출신 알영 고허촌 출신 재위 60년 9월에 내란, 이듬해 3월 사망
자연사가 아니라고 巳陵 5토막...죽은지 7일만에 발견
2대 남해왕 장남이 아니고 내란수습에 공이 컸을것 백성이 추대해서 왕이 됨
3대 유리왕 탈해와 떡을 깨물어 이 수가 많아 왕이 됨
이자국-이사금을 국호로
성씨 하사 양산부는 이씨, 고허부는 최씨, 대수무는 손씨, 간진부는 정씨, 가리부는 배씨, 명활부는 설씨
4대 탈해왕
남해왕의 사위(장녀 아효와 결혼) 유리왕의 유언에 따라 나의 두 아들이 탈해를 따르지 못하니탈해를 왕으로 하라고
탈해가 조정을 완전히 장악 유리왕 20년부터 실질적인 왕은 탈해였다.
27대 선덕왕
처음의 여왕, 진평왕의 둘째 딸,남편 김용춘, 흠반, 을재 셋이었다.
세 남편은 모두 유부남이었으나 여왕이 원하여서...김춘추는 선덕여왕과 결혼하기 전에 김용춘이 나은 아들이다.
당나라 이세민은 여자라고 3년 동안 봉작을 내리지 않았다.
선덕여왕이 미리 안 세 가지
모란 꽃에 나비가 없는 것으로 향기 없음을 알았고
옥문지에서 겨울에 개구리 우는 것을 보고 여근곡에 백제군이 숨어 있는 것을 알았고
자기가 죽을 날과 시를 알고 무덤자리를 미리 정하였음
55대 경애왕 53대 신덕왕의 차남 장남은 54대 경명왕으로 후사가 없어서
견훤이 고을부를 침범했다는 소리를 듣고 다급한 심정으로 왕비와 궁녀 종실들과 함께 포석사에 나가 제를 올리고 국가의 안녕을 기원중 백제군이 밀어닥침
56대 경순왕 경애왕의 외종제 왕권 상실...
후당 명종이 933년에 왕건을 고려왕에 책봉하는 사신을 보냈으나 신라에는 보재지 않음
935년 신라를 개칭 경주라 하고 경순왕의 식읍으로 줌...992년 신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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