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문화는 겨우 2-3백년전부터의 것이다. 그 전에는 균등상속이었다. 딸 아들 구분없이
제사는 윤회봉사였다. 분할봉사.
처가살이였다. 율곡은 사임당집에서.
이언적도 아버지가 처가살이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양동에는 손씨와 이씨가 같이 살았다.
적,서의 차별이 없었다. 물론 족보도 없었다. 결혼도 여러번 할 수 있었다. 향처는 고향의 처
경처는 벼슬해서 서울에서 가시 결혼한 처, 양반전을 보면 신분도 살 수 있었다.
동성동분 금혼문화가 된 것은 불과 100여년전이다.
조상 무덤 찾는 법...사실은 1000여년전 무덤을 어떻게 찾겠나...
예고향이란 곳에 가서 큰 무덤을 찾아서 자기 조상의 묘라고 주장한다. 그러다가 아무도 의의를 다는 사람이 없으면 자기의 조상 무덤이 되는 것이고...다른 사람이 자기 조상의 무덤이라고 주장하면 싸움이 되기도 한다. 비문은 대개가 지금부터 100년에서 150년전에 만든 것이다.
신라의 봉분형식은 김씨왕들이다.
경주 남산은 금오산과 고위산을 합쳐서 부르는 말이다. 엣날에는 왕족의 산이었다.
우유삼잡이란 부처를 중심으로 오른쪽으로 3바퀴 돈다. 불상은 원래 법당 가운데에 있었다.
조선후기에 오면서 벽에 붙여졌다. 불상의 귀가 긴 이유는 귀걸이를 한 효과를 나타내기 위함이다.
팔부중은 신라 중대이후에 등장하는 석탑외호의 의미이다. 아수라상은 사자탈로 보통 3두 6비이다. 남산 절터의 것은 3두 8비이다. 긴나라는 춤의 신이고 마루라느 뱀이고 가루라는 날짐승의 왕이고 아차는 귀신의 왕이다.
지옥의 상이 아수라상인데 화가 나면 8개의 팔을 휘두르면 온세상이 뒤죽박죽이 된다고해서 수라상이라고 한다고 한다. 건달바상은 악기를 타고 춤을 추면서 인간들을 즐겁게 해주는 신인데 놀고 먹는 사람을 건달이라고 하는 것도 불교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김시습의 호 매월당은 김시습이 거처하던 매화가 있고 달이 뜨는 집의 방 이름이었다.
신라 진평왕때 처음 성을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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