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작교의 행보/내가 한일 할일

인사동을 처음 가보다.

吳鵲橋 2017. 9. 21. 09:43


처음으로 인사동을 돌아볼수 있었다. 

조계사앞 식당에서 점심을 설렁탕으로 먹고 조계사와 인사동은 자유롭게 한 시간동안 보라고 하여서 밥을 빨리 먹고 바로 조계사를 혼자서 둘러보고  인사동을 한 시간동안 돌아볼 수 있었다.


인사동을 요약하면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한 법정동의 명칭이지만, 일반적으로는 골동품, 화랑, 표구, 필방, 전통공예품, 전통찻집, 전통음식점 등이 집중되어 있는 인사동 및 그 인근지역을 지칭함.

인사동이라는 명칭은 일제 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에 처음 사용되었다. 현재의 인사동 지역에는 조선 초기에 한성부 중부 관인방(寬仁坊)과 견평방(堅平坊)이 있었고(방(坊)은 고려와 조선시대에 수도의 행정구역 명칭의 하나로 성안의 일정한 구획을 말함), 1894년 갑오개혁 당시에 이루어진 행정개혁 때는 대사동(大寺洞), 원동(園洞), 승동(承洞), 이문동(李門洞), 향정동(香井洞), 수전동(水典洞) 등이 있었다. 관인방과 대사동에서 가운데 글자 인(仁)과 사(寺)를 각각 따서 인사동이라는 동명이 붙여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사동(댓절골)이라는 명칭은 이 지역에 고려시대에는 흥복사라는 큰 절이 있었고, 조선시대에는 원각사라는 큰 절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졌다.


5층인가 상가를 올라가서 내려다보니 마침 무슨 퍼레이드를 하고 있었다.






큰 도로까지 걸어가서 보니 입구에 이런 모양의 용기가 세개 있었는데 드므가 아닐까 싶다.


전통 얼레빚가게에 들려보았더니 빚 한 개 가격이 무려 30만원이란다.


가장 헐한 것을 보여 달라고 하였더니 보아서 가장 왼쪽 것이 5만원이란다.



무엇을 하나 사기는 사야겠는데 마침 목걸이가 보이기에 들어가 보고 추사의 불이선란도가 조각된 목걸이가 있기에 3000원 주고 샀다. 사고 나서 주인보고 촬영을 부탁하였다.





추사의 불이선란도가 그려진 목걸이에 글자는 오소산만 나오나 원문은 다음과 같다.

"始爲撻俊放筆只可有一不可無二....吳小山見而豪奪可笑"

“처음에는 달준(達俊)을 위하여 거침없이 붓을 놀렸다. 단지 하나는 있을 수 있으나 둘은 있을 수 없다.”,  “오소산(吳小山)이 보고는 빼앗듯이 가져가니 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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