胎室地는 들 가운데 우뚝 서고 가운데는 평평해야 한다. 묘는 음택이지만 태실은 양택이다.
애기가 태어나고 3일후에 항아리에 엽전의 글자면이 위로해서 태를 넣고 밀폐한 항아리를 다시 다른 항아리에 넣어 2중으로 항아리가 된다.
민간은 거의 불에 태우고 물에 떠내려보낸다. 땅에 묻는 경우는 아주 드물게 사대부에서만인 행했다. 자손의 터울을 자주 하려면 집안에 묻고 태우고 터울을 크게 하려면 밖에 묻고 태웠다고 한다.
선석사는 세종대왕자태실 수호사찰로 원찰이었다.
성주군 가천면 법전리 법리미산 정상에 단종태실이 옮겨졌다. 지금은 붕괴되어 태실난간석이 남의 묘의 비석이나 상석이 되어있다고 한다.
태종의 태실은 성주군 용암면 태봉리에 함경도에 있던 것을 옮김 1401년 현에서 목으로 승격
난간석은 민묘의 축대로...
태실은 일제시대 고양시로 거의 옮겨 갔으나 세조앧왕자태실은 면장 도문희가 가지겠다고 해서 지금 성주에 남아있다고 한다.
문종태실은 예천읜 명봉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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