或問 簿佐令者也니 簿所欲爲를 令或不從이면柰何니고 伊川先生 曰 當以誠意動之니라 今令與簿이 不和는 只是爭私意요 令은 是邑之長이니 若能以事父兄之道로 事之하여 過則歸己하고 善則唯恐不歸於令하여 積此誠意면 豈有不動得人이리오
혹문 부좌령자야니 부소욕위를 영혹부종이면 내하니고 이천선생 曰 당이성의동지니라 금령여부이 불화는 지시쟁사의요 영은 시읍지장이니 약능이사부형지도로 사지하여 과칙귀기하고 선칙유공불귀어령하여 적차성의면 기유부동득인이리오
어떤 사람이 물었다. 부(簿)는 영(令)을 보좌하는 자입니다. 부가 하고자 하는 바를 영이 혹 따르지 않는다면 어떻게 합니까? 이천 선생이 말씀하셨다. 마땅히 진실된 뜻으로 영을 움직여야(감응시켜야) 할 것이니라. 지금 영과 부가 화목하지 못은 것은 다만 사사로운 뜻을 다투기 때문이니라. 영은 고을의 우두머리이니, 만약 부형(父兄)을 섬기는 도리로서 영을 섬기되, 잘못이 있으면 자기에게로 돌리고 잘한 것이 있으면 영에게 그 공이 돌아가지 않으면 어쩌나 근심하여야 한다. 이러한 진실된 뜻을 쌓는다면 어찌 사람을 움지이지(감응시키지) 못할 것이 있겠는가?
(字義)
○佐는 도울 좌.
○令(영)과 簿(부)는 위의 글에서 보았듯이 관직명이다.
○奈는 어찌 나(내).
○奈何는 “어떻게, 어찌~”의 뜻으로 흔히 쓰이는 관용구이다.
○이천 선생은 앞 글에 나온 명도 선생의 동생이다. 역시 송나때의 대 유학자이다. 그 두 분을 구분하지 않고 종종 정자(程子)라고 일컫기도 한다.
○誠은 정성 성. 부사로는 진실로 성.
○只是에서 是는 “~이다”의 뜻이다.
○令是邑之長에서 是도 역시 “~이다”란 뜻이다. 長은 명사로 우두머리. 장(長) 등등의 뜻이다.
○不動得人에서 得은 술어뒤에 붙어서 “가능”을 나타낸다. 즉, 動得이 하나의 어구를 형성하는 것이지, 이를 따로 따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