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혜림(김정남의 어머니)생가
성혜림의 생가가 창녕에 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
입향조 성규호 선생이 유원면 회룡에서 이곳(대지면 석리)으로 옮긴 것은 1850년대 그는 ㄷ자의 안채와
사랑채를 짓고 돌처럼 살리라는 뜻으로 아석헌의 아호를 당호로 삼았다고 한다.
2대 찬영은 1909년 처음으로 양파재배에 성공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양파시배지가 되었다.
증손자 유경은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하였다고 한다.
고향에 부인과 세 딸이 있었지만 뜻을 같이하던 김원주를 맞아 아예 딴 살림을 차리고 1남 2녀를 두었는데
어머니 김원주가 1948년 남북정치협상 당시 여맹대표 자격으로 방북했다가 아예 그 곳에 눌러앉았다.
맏이 일기가 이듬해(1949년) 북으로 가고 다시 이듬해(1950년) 전쟁이 터지고 인민군이 북으로 퇴각하던 9월 유경은 두 딸을 데리고 북으로 갔다. 이 때 데리고 간 두 딸이 바로 북한 현대사의 풍운과 비극의 주인공 혜림과 혜량이다.
동생 혜림은 뛰어난 미모와 발군의 연기로 북한의 인민배우가 되어 김정일의 눈에 띄어, 이미 소설가 리기영의 아들 리평과 결혼해서 딸 리옥을 두고 있었지만 김정일의 강청에 의해 이혼하고 동거해서 낳은 아들이
김정남이라고 한다.
양파 시배지 안내판이 마을 입구에 있다.
성혜림의 생가(주인이 부재중이라 내부는 보지 못하였다)
창녕성씨 고가들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355호
모내기가 한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