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己篇(정기편)
정기편은 수신(修身)에 도움이 되는 글귀들이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유가(儒家)에서 강조하는 절제를 통한 인격수양과 더불어 난세(亂世)를 사는 도가(道家) 특유의 처세훈까지 곁들어 있다. 절제할 줄 모르는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性理書에 云見人之善이어든 而尋己之善하고 見人之惡이어든 而尋己之惡하라 如此라야 方是有益이니라
성리서에 운견인지선이어든 이심기지선하고 견인지악이어든 이심기지악하라 여차라야 방시유익이니라
성리서에 이르기를, 남의 선을 보고 자기의 선을 찾으며, 남의 악을 보고 자기의 악을 찾아야 한다. 이와 같이 해야 바야흐로 이로움이 있을 것이로다.
(字義)
○而는 말이을 이. 而는 두 문귀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두 문귀을 순접(and), 역접(but), 인과(and so)관계 등으로 문맥에 따라 적절히 해석한다.
○如此는 자주 쓰이는 관용구.
○方은 바야흐로 방. 예)時方(시방), 方今(방금), 今方(금방).
●是의 쓰임새에 대해서
①옳을 시. ②(지시대명사 또는 지시형용사) 이 시.
③(술어) “~이다”(be동사). 등등 주로 3가지의 뜻이 있다. 是가 지시대명사로 쓰일 경우에 문장의 주어로는 거의 쓰지 않고, 주로 목적어로서의 지시대명사로 사용된다.
주어로 쓰이는 지시대명사는 주로 此가 쓰이고 是는 쓰이지 않는다. 또한 是는 지시대명사․지시형용사로 뿐만 아니라, 술어로서 ③의 뜻으로도 많이 쓰인다.
현대 중국어에서 是는 ②의 뜻으로는 전혀 쓰이지 않고 ③의 뜻으로만 쓴다.
예를 들면 “我是韓國人”하면 “나는 한국인이다”의 뜻이다. 이때 韓國人은 명사구로서 是의 보어이다. 是가 받는 보어는 韓國人처럼 명사구만 있는 것이 아니라, 是뒤에 서술절을 받기도 한다.
또 중요한 것은 是의 주어는 문맥상 분명하면 그 주어를 굳이 써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위의 문장에서도 “是有益”의 주어는 앞 문장 “見人之善而尋己之善,見人之惡而尋己之惡”이며 이는 문맥상 분명히 알 수 있기 때문에 是의 주어를 생략한 것이다.
문맥상 주어가 분명하면 주어가 생략된다는 것을 모르고 흔히 이 술어로 쓰인 是자를 마치 지시대명사로서의 주어인 “이것은, 이는” 등으로 해석하는데 이는 의역을 하는 과정에서 우리말의 지시대명사인 “이것”이란 말을 붙여준 것 뿐이지, 是가 지시대명사로 쓰여서 그렇게 번역하는 것이 아니다.
예)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論語, 學而篇)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아는 것이다.”
여기서도 是는 술어로서 “~이다”의 뜻이며, 지시대명사로서 주어인 “이것이”의 뜻이 아니다. 주어는 문맥상 분명하므로 굳이 써주지 않은 것이다.
다만,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는 우리말의 어감에 맞게 “이것이”란 주어를 붙여준 것뿐이며, 만약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을 한다면,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바로 아는 것이다.”가 될 것이다.
예) 過而不改 是謂過矣 (論語, 衛靈公篇)
“잘못이 있어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을 일러 잘못이라고 한다”
여기서도 是는 술어로 “~이다”의 뜻이며, 주어는 문맥상 분명하므로 굳이 “此”와 같은 주어를 붙여 “此是謂過矣”라 하지 않고 생략된 것이며, 이때 是의 보어는 명사구가 아닌, 서술절로서 “謂過”인 것이다.
즉, 위의 번역에서 “이것을”이라고 하여 마치 是를 지시대명사처럼 번역한 것으로 오해될 수도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우리말로 자연스럽게 옮기는 과정에서 붙여준 것일 뿐이지, 是가 지시대명사이기 때문에 그렇게 번역한 것이 아니다. 위의 문장을 역시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을 한다면, “허물이 있어도 고치지 않는 것이 바로 허물을 말한다”가 되지만, 우리말로 어색하므로 일반적으로 위와 같이 번역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