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내 아래 남동생(相鐸)
나 보다는 4살 아래이지만 호적상으로는 세살 차이로 학교도 3년 간격으로 다녔다. 재주가 있어서 초등학교 때 이미 풍금을 칠 줄 알았다.
(당시 시골 동네학교에서는 학생이 풍금을 탄 것은 처음이었다.)
학교 성적은 늘 1.2등을 하였고 운동신경도 발달하여서 덩불링도 꾀 잘하였다. 달리기도 운동회 때마다 상을 타 올 정도였다.
중학교는 안동사범병설중학교를 다녔다 나는 사범학교 1학년이다 보니 이제는 동생과 함께 내 친구 집에서 하숙을 하였다. 하숙이라야 1주일에 쌀 한 말씩 주고 밥 먹고 잠자는 정도인데 토요일 집에 와서 월요일 아침에 쌀 한 말을 지고 갖다 주는 것이다 그러니 1주일에 5일 먹는 셈이다.(월요일 아침은 집에서 먹고 가고 토요일은 점심 먹고 집에 나오니)
이런 생활을 3년 같이 하였으니 어느 형제보다 정이 더 가는 동생이었다. 내가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동생도 역시 사범학교에 9등으로 입학시험에 합격하였으니 공부는 매우 잘하는 편이었다.
사범학교에 입학하여서는 남자로서 특활을 무용부로 활동하였고 우리 집도 두 사람이 학교에 다니던 것을 혼자 다니니 경제적으로도 조금 여유가 생겨서 테니스도 하고 스케이팅도 할 줄 아는 당시로서는 아주 엘리트였다.
내가 울릉도에 발령을 받아 근무를 하던 겨울 방학에 집에 오면 거뭇골 못(고향의 저수지 이름)에서 스케이팅을 가르쳐 주기도 하였다.
특히 내가 발령 2년 만에 건강검진에서 페결핵 진단을 받고 도저히 믿기지 않아 그해 여름 방학 때 안동보건소에서 확인해보려고 진료 받는데 같이 갔다가 폐결핵이 맞다는 진단을 받고 병원 밖에 주저앉아 절망을 하고 있을 때. 형님 요즈음은 의술이 발달 되었으니 희망을 가지라고 위안을 해 주던 동생이었다.
사범학교를 졸업하고도 연령이 10일 미달 (입학할때는 4월이었는데 졸업할 때는 3월 입학으로 제도가 바뀌다 보니 3월 10일생)되어 경북에서는 발령이 힘들다고 서울을 희망하여 서울로 첫 발령을 받아 서울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야간대학(국제대학)을 졸업하고 석사과정을 고려대학에서 마쳤다. 그러다 보니 승진도 제대로 해서 교장.
학무과장까지 하더니 행정은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다시 현장 교장으로 역임하다가 퇴임하였다. 20대에 맹장수술을 하더니 역시 건강이 그렇게 좋지는 않아 심장에 이상이 있어서 몸조심을 하고 건강에 대한 강의도 많이 들어서 나에게도 수지침술에 대한 책자도 보내주고 하더니 2011년에 갑자기 쓰러져 말도 한마디 못하고 입원한지 불과 며칠 만에 유명을 달리하였다. 슬하에는 은아와 은영 딸 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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