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작교의 행보/나는 누구인가?

★.4.할머니

吳鵲橋 2024. 6. 1. 13:50

.4.할머니

189084일생 일직면 광연동에서 출생

195023일 사망 (음력으로는 1949129일이 정확하다. 내가 지금도 기억하고 있으니까 제사도 그 날 지냈고 아마 호적상은 사망신고가 늦은 것 같음)

환갑을 못하고 60세에 돌아가셨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인 것 같다.

할아버지가 글을 모르니 할머니도 글을 모르시는 것은 당시로서는 당연하였다.

그 때 당시로는 할머니는 키가 아주 크셨다. 할아버지 보다 더 크셨으니까. 할아버지 4형제 중 할아버지는 가장 작으셨고 할머니로서는 가장 크셨다.

무엇이든지 남 주기를 좋아하셔서 거지가 지나가면 그냥 못 계시고 밥을 주셨고 동냥하러 온 거지에게는 곡식을 바가지에 듬뿍 주었다. 마음이 참 좋은 분이셨다. 한 집에 여럿이(당시 작은아버지가족도 함께 살았다) 살다보니 나는 늘 할머니 곁에서 잤다.

나는 여러 식구가 함께 살다보니 어머니 곁에서 자지 못하고 할머니 곁에서 잤다. 그래서 나는 어릴 때 할머니 아들인줄 알았다. 어쩌다가 어머니 방에 가고 싶어서 가면 형에게 늘 너의 방에 가라고 쫓아내어서 할머니 방에서 잤다. 그래서 할머니가 어디 외출이라도 하면 따라가려고 떼를 쓰다가 할머니가 몰래 떼어놓고 가면 울기도 많이 울었다.

때로는 따라가기도 하였다. 의성 고모(할머니의 딸)댁에 갈 때 따라가 보았다.

30여리 되는 길이었는데 아침 먹고 나서서 늦은 점심때가 되어서야 도착한 것 같았다. 의성군 방화동에 있는 큰 고모 댁에도 따라가 보고 의성군 안평면 검실동 고모댁에도 가보았다. 그러고 보니 고모님들의 시집은 거의 의성으로 간 모양이다.

당시에는 석유도 없었는지, 석유 살 돈이 없었는지 장날 할아버지가 말뚝상어를 사오시면 간을 내어서 솥에 달이면 기름이 나오는데 그 기름을 숟가락으로 조금씩 떠서 기름병에 담아 두었다가 그 기름을 접시에 담아서 한지로 심지를 해서 불을 켜기도 하였다. 이런 때도 할머니 곁에서 심부름을 하였다. 기름병 가져오라면 가지고 오고 불을 조금씩 넣으라면 조금씩 넣고 하였다.

이웃집이나 다른 동네, 잔치에 다녀오면 잔치 음식 중 마른 것을 수건에 싸 오셔서 나에게 주셨다. 할머니가 어디 가시면 올 때 맛있는 것 얻어오라고 하고 따라가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런 할머니가 지금 보고 싶어졌다.

 

할머니는 9남매를 나으셨다.

첫째는 여자이고 아버지가 둘째이시다.

아들이 둘, 딸이 일곱인데 지금 살아계신 분은 막내(오순이 71)로서 묵호에 살고 계신다.(2010)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대구에도 한 분 살아계셨는데 돌아가신지가 한 3년 된다.

할머니는 6.25전쟁이 나기 바로 전해에 돌아가셔서 6.25때도 빈소가 그대로 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오촌숙모님들이 우리 집에 와서 일을 하시면서 웃으면서 수다를 떨었다. 그래서 내가 숙모님들은 우리할머니 돌아가시니 그렇게 좋습니까? 라고 하니 너는 할머니 돌아가시니 슬프냐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난다. 우리 남매들 중에는 내가 할머니와 가장 가까웠으니 내가 가장 슬퍼하였던 것 같다.

아버지는 권(상주가 쓰는 삼베로 된 모자)을 쓰고 피란을 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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