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할아버지
할아버지 형제분은 4형제분이었는데 겨울 농한기가 되면 큰할아버지댁
사랑방에 네 분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시면서 우애가 남달랐다.
우리 할아버지는 둘째이시다.
할아버지는 한 글도 한 자도 모르시던 분이시다.
1892년 6월 2일(호적상) 6남매중 둘째로 태어나서 일만 하시다가 1976년 8월 10일에 돌아가셨다.집사람은 철이를 낳으려 울릉도에 들어가고 나혼자 대구의 경북대 후문 앞에 있을 때 전보를 받고 집에 올라갔다.
일을 너무 많이 해서 키가 크지 않으셨는지 모른다.
키는 1M 60CM도 안 되는 조그만 체구였지만 일은 큰 체구를 가진 사람보다 더 잘 하셨다 두엄을 만들기 위한 풀을 베어 놓으면 단단하여 흩어지지가 않을 정도였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개울가나 들에 나가셔서 개똥까지도 거름 한다고 한 삼태기씩 주어오신 분이다.
정말 작고 하찮은 물건이라도 아껴 쓰신 분이다.
겨울이라도 산에 가셔서 나무를 한 짐씩 해오시고 비나 눈이 와서 바깥일을 할 수 없는 날이면 사랑방에서 짚신을 삼거나 새끼를 꼬셔서 소쿠리.바소쿠리 가마니 등을 만드셨다. 때로는 산에서 베어온 싸리나무로 광주리를 만들기도 하셨는데 매우 단단하였다.
설날이 되면 꽃신(꽃신이라고는 하지만 짚신이다. 짚에다가 삼.닥나무껍데기. 헤진 옷 등을 썩어서 꼰 새끼로 만든 짚신)을 만들어주시면 좋아라고 하였다. 손재주가 있어서인지 무엇이든지 만들어서 썼다.
생 소나무를 베어서 적당한 길이로 잘라서 얇게 깎아 말려서 그것으로 큰방에 있는 호롱불의 불을 붙여서 다른 방으로 옮길 때 사용하였다.
그러다가 장날이 되면 소에는 장작이나 솟갑(솔가지)을 실으시고 당신은 지게에 지고 시장에 팔러가셨다.
어쩌다가 소를 몰기위해 따라서 장에 가면 나무를 판 돈으로 엿 한 가락을 사주시면 맛있게 먹었다. 엿 한 가락 얻어먹으려고 8Km나 되는 장터에 따라가곤 하던 일들이 생각난다.
“10원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은 10원 때문에 울 때가 있다
돈은 버는 것보다 모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고 늘 말씀하셨다.
나에게는 어느 유명한 경제학자보다도 더 훌륭한 경제학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까지도 잊지 않고 있다.
그런 할아버지를 보아와서인지 나도 아끼는 데는 남다르다는 소리를 지금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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