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17일 아침 7시 집을 출발하여 동아쇼핑에 가니 7시 40분이었다. 아직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8시가 가까이 오니 한 친구 두 친구 오기 시작하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내가 두 번째로 일찍 온 셈이다.
예정보다 5분 늦게 출발하여 광장타운에서 몇 명이 타고 다시 성서 홈플러스 앞에서 몇 명이 탔다.
총무인 기현이가 합이 18명이라고 하였다. 나는 많이 와서 자리가 모자라면 어떻게 할까 걱정을 하엿는데 걱적은 안 하여도 되었다.
추풍령에서 잠시 쉬고 동학사의 주차장에 도착하니 10시 반 정도 되었다.
동학사로 올라가다가 커다란 등산지도앞에 멈추어서 등산로를 이야기하는데 전문가들이었다. 동학사에서 갑사로 넘어가니 등산을 하지않는 친구들은 4시에 버스를 타고 갑사로 오라는 이야기를 하엿다. 모두가 동학사까지는 같이 갔으나 동학사안에는 들어가지않고 일부는 바로 산행을 하였고 산행을 하지않겠다던 친구 5-6명도 남매바위까지 가서 밥을 먹고는 돌아온다고 하였다. 진상이와 나만 남아서 경내를 돌아보았다.
종루에 종을 보고싶어서 들어갔다가 출입금지구역이라 쫓겨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숙모전을 보게 되어서 사무실에 있는 사람에게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동학사 가는 길에 껍질만 남은 나무가 잘 살고 있다.
8시가 가까이 오니 한 친구 두 친구 오기 시작하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내가 두 번째로 일찍 온 셈이다.
예정보다 5분 늦게 출발하여 광장타운에서 몇 명이 타고 다시 성서 홈플러스 앞에서 몇 명이 탔다.
총무인 기현이가 합이 18명이라고 하였다. 나는 많이 와서 자리가 모자라면 어떻게 할까 걱정을 하엿는데 걱적은 안 하여도 되었다.
추풍령에서 잠시 쉬고 동학사의 주차장에 도착하니 10시 반 정도 되었다.
동학사로 올라가다가 커다란 등산지도앞에 멈추어서 등산로를 이야기하는데 전문가들이었다. 동학사에서 갑사로 넘어가니 등산을 하지않는 친구들은 4시에 버스를 타고 갑사로 오라는 이야기를 하엿다. 모두가 동학사까지는 같이 갔으나 동학사안에는 들어가지않고 일부는 바로 산행을 하였고 산행을 하지않겠다던 친구 5-6명도 남매바위까지 가서 밥을 먹고는 돌아온다고 하였다. 진상이와 나만 남아서 경내를 돌아보았다.
종루에 종을 보고싶어서 들어갔다가 출입금지구역이라 쫓겨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숙모전을 보게 되어서 사무실에 있는 사람에게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동학사 가는 길에 껍질만 남은 나무가 잘 살고 있다.
일주문의 글씨 (여초선생)
일주문을 지난 계곡
경내에 있는 정자
요즈음은 이렇게 경내에 있는 정자를 가끔 본다.
요즈음은 이렇게 경내에 있는 정자를 가끔 본다.
대웅전에 봉안 된 불상
범종루의 현판은 일중 김충현선생 글씨
단종의 위패를 모신 전각
숙모전앞의 서무
사육신을 비롯한 48위가 모셔짐
사육신을 비롯한 48위가 모셔짐
동무
생육신을 비롯한 48위가 모셔짐
생육신을 비롯한 48위가 모셔짐
야은, 포은, 목은의 삼은의 위패를 모셨다고 삼은각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박재상의 위패를 모신 전각
부도군
검은색은 오래 된 것이고 흰 것은 최근 것인데 모양이 동그라서 옛 맛이 나지 않는다.
검은색은 오래 된 것이고 흰 것은 최근 것인데 모양이 동그라서 옛 맛이 나지 않는다.
갑사의 당가
내가 오늘 계룡산을 찾은 이유중 가장 큰 이유가 이 당간을 보기 위해서였다.
맨 위의 모양이 없어져서 아쉬웠으나 실물을 보기는 매우 어렵다.
내가 오늘 계룡산을 찾은 이유중 가장 큰 이유가 이 당간을 보기 위해서였다.
맨 위의 모양이 없어져서 아쉬웠으나 실물을 보기는 매우 어렵다.
8각원당형의 부도
동학사의 부도모양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동학사의 부도모양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천판과 용뉴를 보면 고려종 같으나 해설은 조선종이라고 되어있었다
일주문
일주문을 지나 다리를 건너자 바로 석등 두 기가 있는데 일본식 석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