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작교의 행보/내가 한일 할일

서예세상에서 답사 화양계곡

吳鵲橋 2016. 3. 7. 17:53



화양서원 다녀왔습니다.


2009년 6월 6일 6시 20분 집을 나섰다.
검찰청주차장까지는 걸어가면 50분정도 걸릴 것같아 걸어가도 될것 같았다.
그런데 가다가 핸드폰 메시지가 왔는데 7시 10분까지는 오라는 것이다. 내용도 보지않고 빠른 걸음으로 갔더니 40분에 갈 수 있었다. 정각 7시 아무도 오지않고 관광버스만 서예세상이란 표지판을 붙이고 있었다. 기사에게 인사하니 왜 이리 일찍 왔느냐? 는 것이다. 차에서 기다리니 한 사람 오기 시작하더니 드디에 균재가 7시 10분 정각에 왔다. 차에서 무엇인가 많이 싣고 왔는데 아침밥까지 준비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찍 오라고 한 것이었다.
부산팀이 조금 늦어서 7시 40분에 출발을 하여 추풍령휴게소에서 아침을 먹었다, 그러나 나는 아침을 먹고 왔기에 오랜만에 추풍령에 세워진 고속도로 개통기념탑을 둘러보았다.
청주금속활자박물관에는 정각 10시 30분에 도착을 하였는데 서울팀은 벌써 와 있었고 가장 가까운 대전팀이 조금 늦었다.
박물관 해설사가 회원으로 있어서 특별히 세미나실에서 서예세상카페운영자들의 인사가 있었다. 곧 박물관의 영상물을 보고는 박물관에 전시된 것을 관람하고 화양계곡으로 출발하여 화양계곡의 야회에서 비빔밥으로 점심을 하고는 곧장 화양서원과 만동묘지를 해설사의 해설을 듣고 마애각 書를 관람하였다.
해설사분께 만동묘지 입구에 확처럼 파인 돌이 있는데 무엇에 사용하던 물건이냐고 질문을 하니 곡식을 찧거나 빻던 것이라기에 구멍이 뚫어져 있다고 하니 보지 못하였다고 하기에 확인을 하고 원래 여기서 나온 돌이냐? 아니면 다른 곳에서 옮겨온 것이냐고 물어보니 그것도 모른다기에 이 부근에 천주교 성지가 있느냐고 하니 바로 곁에는 없어도 있으며 성지는 아니어도 신자들이 사형은 많이 당하였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 생각에는 형구 같아 보인다고 하였더니 좋은 이야기 들었다고 막걸리 한 주발을 사셨다. 내가 사주어야 될 터인데 본의 아니게 해설사의 술을 얻어먹었다.
나는 이 때까지 만동묘와 화양서원이 따로 있는 줄 알았는데 한 곳에 있었다.
관람후 전체모임을 하고 수박과 막걸리를 마시면서 행운권을 추첨하고 오후 6시정도 출발하여 추풍령에서 준비해온 국수로 둥근달을 쳐다보면서 저녁을 먹었다. 아침과 저녁까지 주는 답사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단체사진 화양서원 앞 잔디에서 (퍼옴, 121명, 보아서 가장 오른쪽 흰모자 쓴 사람이 오작교임)
추풍령 휴게소의 통일기원시비 (일붕서경보)
휴게소에 아침식사하는 모습
추풍령 휴게소의 탑
청주 고인쇄 박물관
박물관 외벽의 글자들
세미나실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인쇄박물관이 흥덕사지에 건축하였기에 절을 복원하는 중인 것 같음
해설에 보면 신라종이라고 되어있는데 신라종은 용뉴에 여의주가 없다.
여의주는 고려시대로 내려오면선 만들었다. 그러니 이 종은 신라종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화양계곡의 걸어가는 길 숲이 참 아름답다.
강가에서 점심먹는 장면
네 사람분
식사하던 곳의 바로 앞의 강가
건너편
산나무딸 꽃
화양서원의 건물
만동묘의 건물
만동묘에서 건너 보이는 산 삼태봉이라 삼정승이 난다고 하는 봉우리 셋
마애각서 (각석이라고 해설이 되어 있었으나 나는 각서가 더 어울릴 것 같다)
우암 송시열선생의 글씨 비례부동
화양서원을 지난 계곡도 아름다웠다.
문제의 돌 (만동묘 입구의 오른쪽에 있음)
내려오면서 추풍령휴게소에서 저녁을 먹다가 달이 아름다워서 찰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