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작교의 행보/내가 한일 할일

새만금

吳鵲橋 2016. 3. 9. 11:44



새만금 답사 다녀오다.


오랜만에 불교문화연구원의 답사에 참석하였다.
2010년 9월 27일
아침 5시에 일어나서 준비를 마치고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고 택시를 탔더니 기사가 그 방향이 아니라고 내리란다.
아침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하였더니
오랜만에 만난 김재원 박사와 인사를 나누고 아침에 나누어 줄 떡과 인쇄물을 같이 옮기고 버스에 앉아 있으니 거의 출발 시간이 임박하여 어떤 건장한 분이 올라타더니 내 옆의 자리를 가르키면서 비어 있느냐고 물었다. 비었다고 하니 일어서라는 것이다. 왜 그러느냐고 하니 가족과 함께 타야하기 때문에 당신이 다른 자리로 가란다.
참으로 어이 없는 사람이다. 나이도 재법 되어 보이는 사람이
그대로 앉아 있으니 총무, 총무 하고 부르더니 좌석 정리 좀 해달란다. 자기는 가족끼리 같이 앉아 가야 하기 때문에 자리를 정리해서 자리를 마련하라는 것이다.
총무도 아무 대답을 않고 있으니 버스 안을 앞 뒤로 왔다갔다 하다가 다시 와서 자리를 달라고 하기에 나도 가족이 성서 홈풀러스에서 탄다고 양보하지 않았다.
성서에서 박남순선생과 신선생이 탔다.
내가 평소에 자리를 맡아놓지않는데 왠 일로 이렇게 자리를 맡아 놓았느냐고 묻는다. 대답은 다음 휴게소에서 해주겠다는 이야기만 하고 (그 사람이 바로 앞에 탔기에) 휴게소에 내려서 그 이야기를 하였더니 박선생과 신선생이 미친놈 아니냐고 한다.
참으로 별난 사람도 다 있었다.
휴게소의 옆에는 이런 모양을 만들어 놓았는데 남자아이가 오줌누는 상은 보아도 여자아이가 오줌누는 상은 처음 본다.
인공으로 만든 폭포와 돌로 만든 솟대
★. 새만금 방조제
새만금이란 이름을 어떻게 지었는지는 모르지만
김제,만경을 새로이 연다는 뜻으로 새 자만 붙인 것이라 한다.
그런데 金 자를 지명이나 성으로 쓸 때는 김이라고 발음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지은 것 같다.
김제 만경이니 김제가 앞에 들어가야 하는데도 만경이 앞에 들어간 것도 이상하다.
갯벌은 같은 농경지에 비해 100배, 바깥 바다에 비해 40배의 경제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미 선진국에서는 갯벌을 보존하기 위하여 만들었던 간척지도 원형대로 복원하는 추세라고 하는데
우리는 세계최고라고 자랑만 할 때가 아닌 것 같다.
세계 최장 33KM라고 자랑하는 새만금 방조제의 갑문이다.
마침 밀물때라 방조제 안의 물을 빼내고 있는 모습
(퍼옴)
여기는 차로 지나쳤기 때문에 퍼왔다.
점심은 바지락죽으로 먹었는데 처음 먹어보는 것이라 맛이 좋아 더 먹었다.
★. 능가산 내소사
능가산의 능가는 석가모니가 능가경을 설한 곳인 랑카(Lanka)의 음역으로
'그곳에 이르기 어렵다'는 뜻을 가진 인도말이라고 한다.
일주문
내소사 보종각 (일반적으로 법종각이라고 하는데)      
대웅보전(보물 291호)과 삼층석탑 (전북 유형문화재 124호)
대웅보전은 못 하나 쓰지 않는 전통 결구법이라고 한다.
대웅보전의 현판 이름과는 달리 봉안 된 불상은 아미타불로 협시불은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다.
처믐부터 전각이름이 대웅보전이었는지는 의심이 간다.
아미타불을 본존불로 하는 주 전각이라면 무량수전이어야 맞는 것 같다.
내소사 꽃살문
대웅보전의 우물반자 천장
용이 물고기와 게를 물고 있는 것은 모든 중생들을 극락으로 데리고 가겠다는 뜻이라고 한다.
내소사 입구 가게의 막걸리병들 집집마다 가게 앞에 이렇게 진열해 놓아서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 같다.
격포항의 채석강
수나라는 분이 찍어서 보내 준 사진
채석강 반대편의 적벽강(붉은 암반으로 되어 있어서 적벽강이라 이름 하였다)
구암리 지석묘(청동기 시대 남방식 고인돌 10기가 있다.)
돌이 엄청 크다. 가로 5m정도 세로 3m정도 된다. 그 당시 이 무거운 돌을 어떻게 운반하여서 고임돌위에 올렸을까?
개암사 일주문은 최근에 만든 모양인데 주초돌이 거북선모양으로 되어 있었다.
대웅보전
덤벙추초의 울퉁불퉁한 면 위에 기둥의 면을 그랭이법으로 만든 조상의 지헤를 엿볼 수 있었다.
이상한 석등( 하대석 모양이 개 같아서 보살에게 물어보니 호랑이라고 하였으나 아무리 보아도 호랑이 같지않았다)
이상한 석등만 있는 것이 아니고 글씨도 이상하였다.
不字의 가로획이 왜 이리 빈약하고 떠 있는지...석공이 각을 잘 못 한 것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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