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銀海寺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있는 佛光
퇴임하던 해인가 영남일보에,
은해서 성보박물관을 개관하였는데 추사의 佛光이 전시되어 있다고 하여 즉시 보러갔었다.
佛光에 얽힌 이야기를 읽고 재미있어서...
성보박물관 문앞에 갔더니 문은 잠겨있었고 책상 같은 것으로 문을 막아놓아서 볼 수가 없었다.
종무소를 찾아 佛光 글씨를 보러 왔다고 하니 오늘은 안 됩니다.
담당 직원도 없고 아직 정식 개관도 하지 않아서 안 된다고 하더니 안으로 들어오란다.
금방 안 된다고 하여놓고 왜 들어오라고 하는지...
일단 들어가 앉으니 차를 한 잔 가지고 와서 천천히 이야기를 한다.
“대구 박물관에 종사하십니까?” 라고 묻기에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생각해보니 내가 한 목걸이가 대구박물관이란 글씨가 쓰인 것이었다.
박물관 대학을 수료하면 주던 것인데 마침 내가 그것을 하고 갔던 모양이다.
문화재를 보러 갈 때는 늘 이 목걸이를 하고 간다.
그러면서 잠시 기다려 보라고 하더니 어딘가 전화를 하였다. 한 5분간 기다리니 한 사람이 왔었다. 이 분에게 성보박물관을 열어드려라 한다.
그 분을 따라가니
“아직 정식 개관을 하지 않아 문을 열지 않는데 선생님을 위하여 미리 열어드립니다.” 라고 하였다.
5분이면 되니 금방 보고 가겠다고 하고, 들어가서 佛光만 촬영 하고 나왔다.
아마 내가 대구 박물관 직원인 줄 알았던 것 같았다. 아무래도 박물관끼리는 통하니까...
내가 그날 하고 간 목걸이
佛光에 얽힌 이야기는 이렇댜.
은해사 주지가 추사에게 佛光 두 글자를 부탁하였는데 오랫동안 써 주지 않았었다. 그래서 하루는 동자를 보내어 직접 받아오라고 하였는데 동자가 추사가 거처하는 곳을 가보니 벽장에서 佛光을 쓴 종이가 여럿 있었는데 그 중에 한 장을 골라 주었다고 한다. 추사는 한 장을 그냥 써 준 것이 아니라 이런 대가도 여러장을 써서 그 중에 골라서 주는 모양이었다. 그 때까지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서 안 주었는데 사람을 보내왔으니 쓴 것 중에 골라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주지 스님이 보니 佛자의 한 획이 光자보다 엄청 길어서 균형이 맞지 않다고 光자에 맞추어 佛자의 긴 획을 잘라 현판을 만들었다.
다음에 추사가 와서 보니 글씨가 반 동강이 나서 화를 내게 되었고 주지스님이 잘라 낸 것을 다시 붙여서 현판을 만들었다는 이야기이다.
요즈음 佛자 한 字를 길게 쓰는 것이 이 佛字를 흉내 낸 것인지도 모른다.
나도 가끔 1/2크기에 佛字 한 자나 佛心을 써보기도 한다.
★. 재미로...
스님들이 공부하는 방법(신영훈 글에서)
젊은 스님 두 분이 공부를 하러 방장스님을 찾아 방장스님 방에 갔었다.
젊은 스님 두 분이 방장스님께 인사를 하고 무릎을 꿇고 조아리고 앉아서
30여분이 흐른 다음
젊은 스님 중 한 분이...
“선생님 요즈음 공부가 잘 안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질문을 받은 방장스님은 아무 말 없이 30여분이 지난 다음에야
방장스님...
“공부를 안 해서 안 됩니다.”
라고 말을 하고 나서 또다시 침묵이 30여분이 흐른 다음에
젊은 스님 두 분은 같이...
“오늘 참 좋은 공부를 하였습니다.”
라는 말을 남기고 밖으로 나가더라고 하였다.
★. 공부가 안된다고 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한 번 쯤 생각해 볼만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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