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불교문화재

영지사 반야용선

吳鵲橋 2016. 1. 6. 09:40

영지사 반야용선

2015년 6월 6일에 가려던 서예세상의 답사도 메르스 떼문에 취소가 되어서 혼자서라도 답사를 가고 싶었다.
장소를 물색하던 중 오래전부터 영천대창의 영지사 반야용선과 주변의 문화재인 도잠서원,지산고택, 유후재와 옥비를 보기로 하고 아침 9시 내 차를 몰았다.
네비게이션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인지 워낙 규모가 작은 절이라서 나타나지를 않아서 대창면사무소를 찾아가다가 파출소가 있기에 들어가서 물어보고서야 찾아갔다.

 

영지사 입구의 부도밭
부도밭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절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규모는 작지만 역사는 깊다는 것을

 

일주문

 

대체로 탑 또는 사찰의 문 양쪽을 지키는 수문신장(守門神將)의 구실을 담당하며, ‘인왕역사(仁王力士)’라고도 한다. 이 신은 여래의 온갖 비밀된 사적(事迹)을 알고 5백 야차신(夜叉神)을 거느리면서 천불(千佛)의 법을 수호한다고 한다.
보통 사찰 문의 왼쪽에는 밀적금강(密迹金剛), 오른쪽에는 나라연금강(那羅延金剛)이 서 있다. 이 중 나라연금강은 천상계의 역사로 그 힘의 세기가 코끼리의 백만 배가 된다고 한다. 밀적금강은 손에 금강저(金剛杵)라는 무기를 가지고 항상 부처님을 호위하는 야차신으로, 부처님의 비밀한 사적을 들으려는 서원을 세웠으므로 밀적이라고 한다.
이들의 머리 뒤에는 커다란 원형의 두광(頭光)이 있다. 이는 이들이 단순히 힘센 이가 아니라 신성한 지혜를 고루 갖추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보통 나라연금강은 입을 크게 열어 ‘아’ 하고 소리를 내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밀적금강은 입을 굳게 다문 채 방어하는 자세를 취하게 된다. 흔히 입을 열고 있는 역사를 ‘아금강역사’, 입을 다물고 있는 역사를 ‘훔금강역사’라고 하는데, 이때의 ‘아’는 범어의 첫째 글자이고, ‘훔’은 끝 글자이다. 이 금강역사의 입은 시작과 끝을 연결하는 영원과 통일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리고 상의를 입지 않고 옷을 허리에 걸친 채 주먹을 쥐어 밖에서 안으로 한 팔을 올리고 한 팔을 내린 자세를 취하거나, 한 손으로 칼을 잡고 있는 모습 등을 취하기도 한다.
들어가보니 금강문도 겸하고 있었다 금강역사 아상(나라연금강)

 

금강역사 훔상(밀적 금강)

 

범종각이라기 보다는 범종루라고 하여야 맞을 것 같다.

 

범종은 성덕대왈종을 모방한 것 같다.

 

대웅전
석탑의 기단은 없어졌고 탑신과 옥개석만 있었다.

 

대웅전의 반야용선과 악착보살
오늘 답사의 목적이 반야용선과 악착보살을 보는 것이었다.
청도 운문사의 반야용선과 비슷하였으나 악착동자가 가운데 매달려 있고 종의 수도 14개인 것이 운문사것(10개)과는 조금 달랐다.
천장에 매달려 있어 잘 보이지를 않는데다 더욱이 등을 많이 달아놓아 잘 찾지않으면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그냥 불상만 보고 반야용선은 못 보는 모양이다.
어떤 분과 점심공양을 절에서 같이하고 하는 말이 반야용선이 양쪽에 있었는데 한 쪽 것은 없어졌다고 한다.

 

악착보살

 

명부전

 

명부전의 지장보살과 시왕들
시왕들의 조각 재료가 불석이라는 돌이라고 한다.
처음 들어보는 돌이라 옥석을 말하는 것이냐고 되물어보았다니 옥석이 아니고 경주의 불석이란다.
만저 보았더니 정말 돌이었다. 

 

삼성각

 

삼성각에는 일반적으로 칠원여래.나반존자.산신을 모시는데 이곳에는 산신 옆에 한 분이 더 있어서 4성각이 되었다.
무엇 하는 분인지는 주지스님이 계시지 않아 물어보지를 못하였다.

 

심검당

산불조심을 하자는 홍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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