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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성인

吳鵲橋 2018. 4. 25. 22:08

4대 성인은 공교롭게도 동양에 2인 서양에 2인 균등하다.

동양의 성인은 학자이고 제 명대로 살았는데 서양의 성인은 두 분 모두 사형을 집행당했다.


소크라테스    BC470-BC399

외모는 크고 둥근 얼굴에 벗어진 이마 툴 불거진 눈. 웅툭한 코, 두툼한 입술, 땅딸만한 키. 불거진 배. 오리걸음 등으로 추남이었다고 한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로 독배를 마셨다고 한다.

아내는 대표적인 악처로 유명하다. 그래서 악처 때문에 철학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아테네 시민. 문답을 통해 사람의 무지를 깨닫게 한 것으로 유명하다. 돈을 받고 지식을 파는 소피스트로 인해 혼란해진 아테네에는 새로운 스승이 절실히 필요했는데, 그가 바로 소크라테스였다. 그러나 그를 시기하던 자들은 소크라테스가 신을 모독하고 청년을 타락시켰다며 사형에 처했다. 도망치라는 주변 사람의 권유에도 '악법도 법이다'며 독배를 마신다. 소크라테스의 별명은 '아테네의 등에'였다. 소나 말 등의 피를 빨아먹는 등에가 끊임없이 소를 괴롭혀서 움직이게 만드는 것처럼, 소크라테스 역시 살찌고 게을러빠진 아테네인들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생각하도록 귀찮게 했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악처의 대명사 크산티페가 없었다면 그는 세계 4대 성인의 반열에 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예수  BC7-AD26

그리스도 교인들은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神이라고 한다.

후대에 쓰여진 복음서에 나와 있지만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한다.

동정녀 잉태설은 실제로 극히 일부의 복음서에만 나온다고 한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데로 남을 대접하라.

그리스도교의 창시자. 기원전 7년경 베들레헴에서 탄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향인 나사렛 근처를 돌며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사람들의 출신이나 지위에 관계없이 모두를 평등한 하느님의 자손으로 대했다. 그의 사후 제자들이 각국으로 퍼져나가며 그리스도교를 전 유럽에 전파했다.

예수는 그리스도교를 비롯한 여러 종교에서 대단히 중요하게 여겨지는 인물이다. 그리스도교인들은 그를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신'으로 여기며, 이슬람교에서는 그를 선지자 중 한 사람으로 여겨 존경한다. 힌두교에서도 예수가 크리슈나의 사랑을 받은 아들로 신에 대한 의식을 일깨워주기 위해 지상으로 내려왔다고 생각하는 견해가 있으며, 마하트마 간디는 예수에게서 비폭력 무저항 운동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석가 BC563-BC483

누구라도 수행만 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

天上天下唯我獨尊(천상천하유아독존) 三界皆苦我當安之(삼게개고아당안지)라는 유명한 말이 있는데 이 말은 태어자자마가 7걸음을 걸어서 한 말이라고 하는데 믿기지 않는다.

神으로 만들기 위한 말 아닌가 싶다.


본명은 고타마 싯다르타(悉達多喬達摩)로 인도 카필라바스타의 왕자로 태어났다. 인간의 괴로움의 근원을 깨닫고 구원의 방법으로 팔정도(八正道)를 제시했다. 귀족 계급 중심으로 이어지던 인도 종교와 달리 카스트 제도를 부정하였고 신을 부정하였으며(無神論) 누구라도 수행만 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설파해 하층민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왕자의 신분으로 태어나 온갖 부귀영화를 약속받았던 고타마 싯다르타가 보리수 밑에서 세상의 괴로움이 무엇인지 깨달음을 얻어 창시한 불교(佛敎)는 당시 인도 사회를 지배하던 브라만교나 힌두교와는 중대한 차이가 있었다. '누구나 수행만 하면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될 수 있다', '계급은 중요하지 않고 값진 제물도 바칠 필요가 없다'는 불교의 특성은 카스트 제도라는 엄격한 신분제도하에서 고통을 겪던 인도 하층민들에게 새로운 탈출구로 여겨졌을 것이다.

석가의 본명은 고타마 싯다르타이다. 그는 기원전 563년 인도 북쪽 네팔 국경 근처에 있던 카필라바스타에서 슈도다나 왕과 마야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왕에게는 오랫동안 아들이 없었다. 그러다 마야 부인이 하얀 코끼리가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꾼 후 아이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출산이 임박하자 마야 부인은 당시 풍습에 따라 고향으로 향했으나 고향에 도착하기 전 룸비니 동산에 이르렀을 때 산기가 와서 아들을 낳게 되었다. 이는 아소카 왕이 석가모니의 성지를 순례하며 세웠던 석주가 1896년에 발견되며 증명되었다.

경전에 따르면 석가모니가 태어나자 하늘에 오색구름과 무지개가 피었으며 가릉빈가가 왕자의 탄생을 축하했다고 한다. 석가모니 왕자는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어가 오른손은 하늘을 향하고 왼손은 땅을 향한 채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라고 외쳤다고 한다. 이는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 오직 나 홀로 존귀(尊貴)하도다. 삼계(三界(가 모두 고통스러우니 내가 마땅히 이를 평안히 하리라"라는 뜻이다.


공자 BC551- BC479

공자의 아버지가  70세인가 16세인 아내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흔히 野合之子라고 한다.

4대 성인 중 한 사람으로 노나라 사람. 유교의 시조로서 중국 최초의 민간 사상가이자 교육자. 어머니는 아들을 얻기 위해 니구산(尼丘山)에 가서 신령님께 기도를 올리고 공자를 낳았다. 그런 까닭에 공자의 이름 구(丘)를 니구산의 구(丘) 자에서 따왔다고 하는데, 일설에는 그가 태어날 때 이마 가운데가 니구산처럼 골이 파여 있었기 때문에 이름을 구(丘)라고 지었다고도 한다. 어렸을 때부터 예(禮)에 뛰어났으며, 천하를 주유하며 인(仁)에 기초한 정치를 펼치려 했으나 실패하여 유가 경전을 정리·편찬하는 데 전념하고, 제자 양성에 힘썼다. 그 결과 3,000여 명의 제자들을 길러냈다. 공자의 사상을 담고 있는 《논어》는 그의 제자들이 스승이 죽은 후 편찬한 것이다.

석가는 자비를 예수는 사랑을 스크라테스는 진리 공자는 仁을 중시하였다고 한다.

말만 다르지 내용은 다 같은 말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