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방사우를 준비하고 나서 구성궁예천명을 익히면서 처음으로 전지 한 장에 절임을 하여보았다.
그 다음에는 2*7지에 써서 대구시 학원 연합전에 출품을 하게 되었다.
그 다음부터 법첩을 한 권씩 익히면서 절임을 해 보았던 것이다.
절임을 할 때는 서문시장이나 염매시장 포목점에 가서 광목을 떠 와서 모전을 만드는데 글자의 수에 따른 줄을 긋는 일을 한다. 그것도 잘 못하여 동료들의 도움을 받았다.
행서가 서예의 꽃이라고는 하나 나는 차근차근 해서(댱해,육조해), 예서, 전서를 써보고 행서를 쓰기로 마음 먹었다.
아마 그 때의 공모전 규격이 200* 70이어서 그 크기에 맞추어서 연습한 것 같다.
내가 글씨를 연습할 때는 2,*7지가 따로 나온 것이 없어서 전지 한장에 반절을 붙여서 썼다.
붙인 자리가 되도록 표시가 나지 않게 붙여야한다.
그런데 나는 이런 것을 잘 할 줄 몰라서 동료(주로 소천 김영옥)들이 만들어 주었다.
그 때의 동료들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구성궁 예천명,화도사비(구양순) 다음에 익힌 것이 공자 묘당비(우세남) 같다.
그 다음에는 2*7지에 써서 대구시 학원 연합전에 출품을 하게 되었다.
그 다음부터 법첩을 한 권씩 익히면서 절임을 해 보았던 것이다.
절임을 할 때는 서문시장이나 염매시장 포목점에 가서 광목을 떠 와서 모전을 만드는데 글자의 수에 따른 줄을 긋는 일을 한다. 그것도 잘 못하여 동료들의 도움을 받았다.
행서가 서예의 꽃이라고는 하나 나는 차근차근 해서(댱해,육조해), 예서, 전서를 써보고 행서를 쓰기로 마음 먹었다.
아마 그 때의 공모전 규격이 200* 70이어서 그 크기에 맞추어서 연습한 것 같다.
내가 글씨를 연습할 때는 2,*7지가 따로 나온 것이 없어서 전지 한장에 반절을 붙여서 썼다.
붙인 자리가 되도록 표시가 나지 않게 붙여야한다.
그런데 나는 이런 것을 잘 할 줄 몰라서 동료(주로 소천 김영옥)들이 만들어 주었다.
그 때의 동료들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구성궁 예천명,화도사비(구양순) 다음에 익힌 것이 공자 묘당비(우세남) 같다.
구성궁 예천명 (2*7지) (처음으로 대구시 학원 연합전시회 출품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