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월드에서(글씨)

경산정평 근무할 때 글씨하던 몇 분과 만났다.

吳鵲橋 2017. 9. 2. 10:23



경산정평 근무할 때 글씨하던 몇 분과 만났다.


정평 초등학교 근무할 때 학부형 한 분이 내 교실에 서탁이 있는 것을 보고 글씨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자기가 쓰는 서실을 한 번 오라해서 갔더니 너무나 서법에 맞지않아서 여기서 배우면 글씨 버린다고, 시민회관에서 좋은 선생님(윤정미 서산선생의 제자이고 나와도 같이 공부하였으며 계대서예과를 졸업)이 지도한다고 거기 가서 배우라고 한 것이 인연이 되어 네 분 정도 알게 되었다. 그 분 중의 한 분이 천연염색으로 가공한 물품을 파는 가게를 내었고 오랜만에 모여서 점심이나 한 끼 하자 하여 갔더니 자인에 동암장병용이란 분이 자기집 화단을 구경오란다고 거기 가자는 것이다. 점심은 자인에 한 식을 잘 하는 집이 있으니 거기 가서 먹자는 것이다.
그래서 정평학교에 차를 대어놓고 가게를 찾아가니 제법 아담하게 꾸며져 있었다.
2000년부터 2003년까지 3년을 근무하였던 정평초등학교
학부형이었던 월정이 낸 천연염색가게
가게 안에서 차 한 잔을 하고 있는 서예하시던 분들
자인의 장병용씨댁 (서예, 수석, 화초가꾸기를 잘 하신다.)
안마당이 모두 꽃과 나무로 잘 정리되어있었다.
장병용씨의 소장품
가혜(이방자여사의 죽)
이방자여사의 글씨
소헌 김만호씨의 글씨
수석에 관계하면서 모은 목걸이
장병용씨가의 앞 복숭아꽃
접사
남정
청정
월정, 남정, 청정
사진 찍는 설명을 하고 있는 분이 옷골 최씨의 후손 최성식씨이다.



수혜 김재영씨의 수석과 동양화전


수혜는 약 20년여전에 청오서실에서 사군자가 어떤 것인가를 알아보려고 방학때마다 5년동안 다닌 적이 있다. 그 때 안 분이다. 나보다는 10년이 위이고 한 번은 자기집에 가자고 하여 가보았더니 수석과 수석전회때마다 만든 패들이, 한 방 가득하였다. 그 이후 동양화까지 한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전시회를 열 줄은 몰랐다.
동양화는 엄청 큰 작품들이었다.
시민회관에 걸린 현수막
전시실의 플랜카-드
가만히 보면 하나하나 꽃을 그림으로 하여 전체를 구성하였다.
수혜의 글씨
사군자를 그림의 배경으로 구성하고 원안에 그렸다.
수석회의 도록들
장병용씨의 축하글
수석회전의 기념품들
작품감상을 하고 나오다가 수혜를 만났더니 소품 한 작품을 주었다.
낙관에 孟夏가 되어야 맞을 것 같은데 盃夏가 되어버린 것 같다. 아들자가 아니불자가 되었다.
글씨하는 사람으로써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래서 글자는 잘 모르면 자전을 찾아보고 써야한다.



여초 김응현선생의 글씨


여초선생이 70년대에 박정희 대통령이 광화문 현판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썼다고 광화문으로 읽지 않고 문화광으로 읽어야 된다는 아주 심한 평을 한 일이 있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30년여가 지난 지금 약전골목의 현판을 보니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써져 있었다. 바로 여초선생의 글씨였다. 여초선생도 시대의 흐름은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여초 김응현선생의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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