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작교의 행보/나는 누구인가?

가정교사 시절

吳鵲橋 2024. 9. 13. 12:40

가정교사 시절

두 달 쯤 후에 상점을 나와서 삼척 시멘트회사 사택에서 가정교사를 시작하였다. 가게에 과자를 사러 오셨던 시멘트회사간부 가족분들이 나를 보고 어디서 무엇 하던 사람인가를 알아보고서 사범학교를 졸업한 것을 알고 가정교사가 입대하여서 아이들이 놀고 있으니 와서 좀 해주었으면 부탁을 받았기에 가게를 그만 두고 찾아갔던 것이다. 오전에는 오십천에 은어 낚시를 하다가 오후가 되면 1학년 1, 5학년 4, 6학년 1, 저녁에는 고등학생 1(수학만) 지도를 하고 다음해 봄에 내려왔다.

 

쉬운 것이 어디 있으랴만은 가정교사 시절도 만만치 않았다.

처음에 5학년 여학생 4명을 오후 3시부터 지도하기로 하였는데 보수도 정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냥 밥 얻어먹고 하숙비를 대어주는 것으로 시작한 듯하다. 그렇게 하다 보니 6학년 홍순명이라는 아이를 부탁받게 되었다. 당시는 중학교 입학시험제도가 있을 때라 6학년은 과외공부를 하고 오후 늦게 오니 5학년을 2시간 정도 하고 다음에 6학년을 하였다. 그랬더니 5학년 마치기 전인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2시간의 여유가 생겼는데 1학년짜리 한 사람이 부탁을 하여서 이왕 하는 것 오후 시간은 아예 과외 지도하는 시간으로 하였다.

이렇게 한 달 정도를 하다 보니 고등학교1학년 학생의 어머니가 자기 딸 과외를 부탁하였으나 거절하였다. 나도 고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았는데 어떻게 고등학생을 가르칠 수 없고 공대 나온 시멘트회사원이 많으니 부탁하라고 거절을 하였던 것이었다. 며칠 후에 다시 그 어머님이 오셔서 딸을 직접 만나보라는 것이다. 그날 저녁 6학년을 마치고 배 과장이란 집에 갔더니 고등학교 1학년이라고 하는 여학생이 있었는데 등치가 나보다 큰 것 같았다. 이야기를 하여보니 다른 과목은 잘 하는데 수학만이 취미를 잃어서 수학 시간에는 아예 딴 짓을 한다는 것이며 수학에 취미를 갖게만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시키는 대로 할 수 있느냐고 물으니 무엇이든지 하겠다는 것이다.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참을 수 있느냐고 하니 참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 날부터 6학년 아이 집에서 저녁을 먹고 고등학생 집에서 고등학생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데 그 어머니가 커피를 내 놓으시는 것이었다. 커피라고는 난생 처음 먹어보았다.

첫날은 지도할 방향을 이야기하였는데 중학교 1학년 수학책을 구하여오라고 하였다. 고등학생이니 중학교 수학이야 풀 수 있을 것 같아서 자신감을 갖게 하려고 다음 날 말대로 구하여 왔다. 1페이지 문제부터 차근차근 푸는 방법을 지도하고는 단원이 끝날 때까지는 스스로 풀다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으라고 하였다. 우선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하고 취미를 붙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중학교 1학년 교과서를 1개월 만에 끝내고 같은 방법으로 2학년 3학년 교과서까지 마쳤다. 역시 머리는 영리하여서 내 뜻을 잘 받아들여서 취미도 붙게 되었다.

10월 쯤 되어서 고등학교 수학으로 들어가게 되니 내가 잘 풀 수 없었다. 때로는 오전에 서점에 가서 참고서를 보고 문제풀이 방법을 알아서 지도한 적도 있었다.

어쨌건 이렇게 하여 11월말 시험이 있었는데 수학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같았다. 다른 공부는 좀 잘 못 치르더라도 수학은 나에게 배웠으니 전보다 많은 점수를 받아야 내 체면이 선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하여 수학시험의 점수가 85점 받은 것 같았다.

그래서 어머님도 매우 좋아하시고 고등학생도 매우 만족한 것 같았다.

이제 취미도 붙었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겨서

더 이상 수학을 가르치지 않았으나 저녁은 가끔 먹게 되었는데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시고 나면 어머님이 고이를 치자는 것이었다.

부모님은 한국 사람이었지만 일본에서 생활을 하다가 한국에 나오신 분이라 일본 생활풍습이 몸에 베어 있었다.

고이란 화투로 하는 게임인데 국화 10을 십에도, 쭉지에도 붙이고 쭉지도 10장하면 점수를 주었고 5를 모두어도 점수를 주고 당시로는 처음 보는 방식이었는데 10년쯤 지나고 나니 우리나라에도 고스톱이라는 화투가 유행하게 되었다 알고 보니 나는 10년 전에 배웠던 고이라는 것이바로 고스톱이었다.

당구도 이 때 알았다. 시멘트회사 클럽이라는 곳에 가면 다방도 있고 가게도 있었고 당구장도 있었고 탁구장도 있었다. 오전에 사택에 가면 할 일이 없으니 이곳저곳 구경을 시켜주었다. 바로 고등학생의 외삼촌이 한 집에 살았었는데 쉬는 날에는 나를 불러서 일부러 구경도 시켜주고 때로는 과외수업을 마치고 내가 숙소로 갈 때 같이 나가서 다방이란 곳에서 차도 사주신 분이었다. 다방도 그 때 처음 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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