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교문화재

화양서원과 만동묘

吳鵲橋 2016. 1. 21. 13:25



화양서원과 만동묘


2009년 6월 6일 화양서원을 찾았다. 서원의 입구는 문도 하나 없는 것이 이상하였다. 아마 아직 복원이 완료되지않아서인 것같이 생각되었다.
그런데 서원안에 만동묘가 있는 것인지 만동묘안에 서원이 있는 것인지 구분이 되지않았다.
주차장에서 서원까지는 약 10분정도 걸어가야하는데 숲길이 아주 시원하다.
계곡의 보
식당앞의 절경
서원 입구에 있는 유적안내도
현판은 서원이나 내용은 사당이었다. 안에는 송시열의 영정이 있었다. 왜 이렇게 현판을 붙였는지 해설사에게 물어보고 싶었으나 여러사람이 질문을 하고 있었서 나까지 질문하면 많은 시간이 걸릴 것같아 하지 않았다.
이사진은 서예세상의 동구씨 사진을 퍼옴
만동묘로 들어가는 삼문의 현판
만동묘 안에는 명나라 신종과 의종 우암의 위패가 봉안되어있었다.
묘정비
안타깝게도 비문은 일제가 다 지워버려서 알아볼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우입좌출이라고 하나 왼쪽문만 열려있다. 보통 편의상 우측만 열어놓는데 여기는 좌측문을 열어놓았다.
계단이 가파르고 숫자가 3,5,3,5,9로 되어 있는데 우리의 양수의 크기를 차례로 배열 하여 9가 가장 큰수라 제일
위에 하였다는 설명이다.
만동묘에서 바라본 앞산봉우리 삼태봉이라 삼정승이 난다고 하였다.
서원 위의 계곡 (계곡이 참 아름다웠다.)
암각서 충효
非禮不動 숭정황제어필
大明天地崇禎日月 우암 송시열선생 글씨
이와같이 바로 곁에 붙어있다.
대원군 되기전 석파 이하응대군이 하마비에 다달아 말에서 내리지 않자 유생들에게 봉변을 당하였다는 하마비를 찾으니 해설사님이 이것을 가르쳐주었다. 이것이 하마비와 어떤 관계인지를 물어보았으나 모른다는 것이다. 아마 이 부근에 하마비가 있었던 것 같다.
당간지주라는 분도 있었으나 당간지주이면 가까이 붙어 있어야 하는데 멀리 떨어져 있어서 무엇에 사용하였던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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