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정사를 20여년만에 가보니 길을 잊어버려 한 구간 더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서 찾아들어갔다.
성덕대왕 신종을 모방한 모양인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포뢰가 여의주를 들고 있었다.
신라시대의 포뢰는 여의주를 갖지 않는다.
'문화 > 불교문화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느 사찰 (0) | 2021.07.09 |
---|---|
동화사 (0) | 2019.12.21 |
영산암 (0) | 2019.04.11 |
관음보살은 여자인가 남자인가? (0) | 2018.08.18 |
피아골의 다락논은 어디로... (0) | 2018.07.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