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불교문화재

유서깊은 봉은사

吳鵲橋 2016. 1. 4. 11:53

유서깊은 봉은사

2014년 6월 15일 영남불교문화연구소장이신 김재원박사기 이끄는 답사에 동참하였다.
천년고찰 봉은사가 서울 중심인 강남의 큰 도로 바로 옆에 있다는 것에 놀랐다.
내가 봉은사를 찾은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우리나라 글씨의 1인자인 추사선생이 돌아가시기 3일전에 썼다는 판전과
전통사찰을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일주문(봉은사에서는 진여문)이며 사천왕문이기도 하다.
안에는 목조 사천왕이 안치되어있다.
진여문이란?

 

사물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뜻하며 평등하고 차별이 없는 절대의 진리를 이른다고 한다.

 

바깥에서 보면 일주문이란 현판이 있다.

 

안에서 보면 이런 현판이 있다.

 

오늘 점심은 사찰음식으로 국수를 먹었다.
식당이 절의 규모답게 400여명이 동시 먹을 수 있는 식탁이 배열되어있었다.

 

식당건물로 공양을 하기 위해 줄 서 있는 모습

 

보우대사 봉은탑

 

법왕루는 사시예불과 기도, 수행이 이루어지는 곳

 

대웅전 현판 (추사 글씨)
추사 글씨인데 말년의 글씨로 보인다.
판전과 비슷한 시기인 듯 닮아있다.

 

대웅전의 어칸 계단
가운데 용을 조각한 것이 특이하여 알아보았더니 원찰로 임금이나 왕후가 나왔을 때
올라가는 게단이어서 왕을 상징하는 용을 조각하였다고 한다.

 

백중절을 앞 두고 다는 등인 것 같은데 모두가 흰색으로 되어있었다.
4월 8일은 여러색으로 하는데 백중은 돌아가신 부모를 생각하는 날이라서 흰색으로 통일 한 듯
하다.

 

칠성각인데 현판에는 북극보전이라고 되어있었다.
칠성각은 도교에서 유래한 칠성신을 모시는 전각인데 이곳은 북극성을 모신 곳이라 격을 높여서
전이라고 한 모양인데 그것도 보자를 넣어서 보전이란 사찰건물중 가장 격이 높게 한 것 같다.
칠성신은 옛날부터 민간에서 재물과 재능을 주고 아이들의 수명을 늘려주고 비를 내려
풍년을 들게 하는 신으로 믿어왔다.

 

미륵대불

 

내가 오늘 답사를 한 것은 이 글씨를 보기 위한 것이 주목적이었다.
사진이나 책에서는 여러번 보았지만 직접 보기는 처음이었다.
글씨를 처음 배우는 사람의 글씨처럼 보인다.
서예용어로는 生-熟-生이 되어야 경지에 이른다고 한다.
처음 배울 때는 글자 그대로 생디이다가 능숙하고 익숙해져서 다시 모든 것을 버리고 천진난만한 글씨가 된다는 뜻인데 추사는 그것을 정말 잘 지킨 훌륭한 스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떤이는 童子體라고도 한다.(때묻지않고 기교를 전혀부리지 않았다고해서)
불교 용어로 말 한다면 해탈의 경지라고나 할까?
낙관은 七十一果病中作이라고 되었는데 71세에 과천에서 果老(추사의 호)가
병중에 쓴 작품이라는 뜻인데 이 글씨를 쓰고 3일 후에 돌아가셨다니 죽음을 간파한 것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흥선대원위영세불망비

 

추사김정희선생기적비
판전건물옆에 있다.

 

종루의 범종과 법고

종루의 건축물 모양이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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