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려넣거나 글씨를 써서 품위를 더하고 선추(扇錘)에 술을 달아 장식하기도 한다. 사용하지 않을 때는 부채집에 넣어두는데 부채집에도 아름다운 수를 놓는다. 합죽선의 부분 명칭은 종이·비단 등을 바른 바닥면 전체를 선면, 선면에 붙인 부채살을 속살, 살이 선면 밑으로까지 나와 보이는 살을 목살, 부채의 가장자리 갓대를 변죽, 부채를 폈을 때 아랫부분이 비둘기 꽁지처럼 펴지는 곳을 군안(君眼), 목살을 고정시키는 못을 사복(砂卜), 선추나 매듭을 달기 위한 고리를 환(環), 부채의 밑에 있는 꼭지 부분에 속으로 들어가 있는 뼈를 내각(內角), 변죽의 밑부분에 밖으로 붙이는 뼈를 외각(外角), 변죽의 나무와 뼈 사이에 까만 선이 보이도록 상감하는 부분에 대어주는 나무를 수침목(水沈木), 부채 밑 고리에 중심을 잡기 위하여 매달은 노리개를 선추라고 한다. 고려 중엽부터 중국에 진상하는 품목에 오를 정도로 합죽선은 수공예품 가운데서도 명품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중국이나 일본에 본격적으로 수출하기도 했다. 조선 후기부터 부채는 점점 대형화되고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다. 그러나 수요의 증가와 함께 대밭이 고갈되는 폐단이 생겨 과다한 사치를 금하는 명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부채
쥘 부채에는 선추(扇錘)라 불리는 부채의 고리에 장식품을 매다는데 선초(扇貂)라고도 한다. 나무에 조각한 것, 말총으로 엮은 것, 비취․호박․옥․금․은 등으로 만든 것 등 여러 가지 종류가 있었다. 또 선추 안에 향(香)을 넣어 좋은 냄새를 풍기게 하기도 하고, 귀이개와 이쑤시개를 넣은 초혜집이나 구급용 침을 넣은 침통 혹은 나침반 역할을 하는 패철을 달기도 하였다. 또한 부채는 가까이서 직접 사용하는 것이기에 선면(扇面)이라 불리는 부채 거죽인 천이나 종이에 감상할 수 있는 글 또는 그림을 그려 넣었다.
법첩과 체본
어제 효목 1동에서 왕희지의 낙의론을 쓰다가 다른 분들이 좌문은 작고 우문은 크다라는 소리를 듣고 무슨 말인가 물어보니 문문자의 왼쪽은 작아야하고 오른쪽은 커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아마 좌실우허를 이야기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법첩이라고 하는 책을 보니 표지에는 채본(採本)이라고 썼는데 누가 썼느냐?고 하니 본인이 썼다고 한다. 採本이 아니라 體本이어야 맞다. 대구의 동0라는 사람이 쓴 것인데 복사를 하여서 법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내가 보니 세가 향배가 뒤썪여서 법첩으로 사용하기에는 조금 곤란한 것 같았다. 이분들이 처음으로 글씨를 쓴다고 왔을 때 바른 법첩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는데도 내내 바른 것은 던져두고 제 멋대로 쓴 것을 보고 쓴다. 여초선생의 말을 빌리면 쓴다기 보다는 그린다는 표현이 맞지만 ... 안진경의 글씨는 향세이고 구양순의 글씨는 배세인데 이것은 한 장에도 향배가 썪여있는 체본이다. 향배세의 이야기를 하니 옆의 한 분이 보기만 좋으면 된다고 하였다. 누가 보기에 좋아야 하는지? 궁금하다. 초등학생이 보기에 좋으면 되는 것인지 자신이 보기에 좋으면 되는 것인지 자신이 보기에 좋으려면 혼자서 보기좋도록만 쓰면 된다. 그러나 서예는 엄격히 서사와 구분이 되어야한다. 체본을 채본으로 쓰는 사람들과 글씨 이야기를 한 내가 잘못이었다. 앞으로 이분들과는 글씨 이야기를 접어야 할 것 같다.
★. 법첩이란 ? 역대 명인의 글씨를 모아서 돌이나 나무판에 새겨 탁본을 뜨고 인쇄한 것. 넓은 의미로는 진적(眞跡)·모사본·금석(金石)·탁본 등의 첩을 총칭하기도 하며, 오늘날의 복제본에 해당된다. 내용이 한 종류인 경우는 단첩(單帖)이라 하고, 여러 종류의 법서를 모은 것은 집첩(集帖),·휘첩(彙帖)이라 한다. 단첩으로 가장 오래된 예는 왕희지의 〈십칠첩〉이고, 집첩의 효시는 한대(漢代)에서 당대(唐代)에 이르는 명가 80여 명의 글씨를 모아서 992년에 새긴 〈순화각첩 淳化閣帖〉이다. 한국에서는 조선 초기 안평대군이 편각한 〈비해당집고첩 匪懈堂集古帖〉이 가장 오래된 것이나 모두 중국의 명적을 수록한 것이다. 한국 글씨를 모은 것으로는 중종 때 신공제(申公濟)가 편집한
〈해동명적 海東名跡> 이 전하고 있는데, 앞편에는 조선 역대 국왕의 글씨가 실려 있고, 뒤편에는 신라시대의 김생(金生)·최치원(崔致遠)을 비롯하여 고려와 조선시대 명가들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이밖에도 이우(李俁)가 편집한 〈관란정첩 觀瀾亭帖〉과 〈대동금석서 大東金石書〉, 이지정(李志定)의 〈대동서법〉이 있고, 근대에는 박문회(朴文會)의 〈고금역대법첩 古今歷代法帖〉, 백두용(白斗鏞)의 〈해동명가필보 海東名家筆譜〉 등이 있다. 그러나 이들 법첩은 서법을 전문적으로 취급한 것은 별로 없고 대부분 개인 문집 중에서 뽑은 것을 주로 싣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옛날의 훌륭한 글씨의 명적을 탁본하여 서예 학습을 위해 책으로 만든 것.
★. 體本이란? , 書體(서체)의 本(본)이란 말로서 '어떤 글자체의 본보기'를 말하죠. 우리의 말 중에 '본 뜨다'라는 말이 있죠? 예를 들어 "추사체의 본을 떠서 옷에 수를 놓았다"처럼요. 따라서 선생님이 제자에게 내가 본보기를 써 줄테니까 이것을 기본으로 해서 배우라고 써 주시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서예 학습에서 임서를 할 때 본보기가 되는 글씨본
백흥암에 있는 추사글씨
영천은해사의 암자인 백흥암에 있는 추사 글씨 불교방송을 보다가 모니터에 나온 것을 사진 찍은 것임 '十笏方丈'이라고 하는데 읽을 때는 시홀방장이라고 읽는다. 어전 회의를 할 때 벼슬아치들이 얼굴을 가리는 것을 笏이라고 하는데 그 홀 10개로 집을 지은 것이니 규모가 작다는 표시라고 한다.
고현현상을 막기 위하여 가운데 두 자는 조금 작게 써졌다. 양 가의 글자가 획수는 적지만 오히려 크게 써졌다. 추사다운 글씨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퍼옴) 은해사의 대웅전과 보화루 세 자인 대웅전도 가운데 자를 작게 써졌다.
보화루 역시 가운데 자는 작게 써졌다.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있는 불광 요즈음 불자 한 자를 길게 쓰는 것이 이 불자를 흉내 낸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