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년 가을에 큰 일을 저질렀다.
우리반 친구(서의술)가 전교학생 부위원장에 출마를 하였었다. 그래서 선거운동을 해주기로 하였다. 의성서 통학하는 친구라서 같은 열차를 타고 다니다 보니 친하여졌다. 의성 철파라는 동네에 사는 친구인데 늦은 가을 토요일 집에 가려고 안동기차역에 나오니 김국태라는 내 짝도 나와 있었다.
오늘 우리 집에 놀러가자는 것이었다. 거기서 밥 먹고 자고 내일 열차로 학교가면 된다는 것이었다. 한 번도 남의 집에 가서 잔 일이 없었는데...집에서 부모님이 기다릴터인데 걱정이 되어서 안 가겠다고 하니 내 짝인 국태도 가니 함께 가자는 것이었다.(당시는 전화도 집에 없어서 못 간다는 이야기를 집에 할 수도 없어서 부모님이 걱정할 것 같아서) 친구가 모처럼 자기 집에 가자는데 안 갈 수도 없어서 책가방을 둘러맨 채로 의성역에 내려서 철파라는 동네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는 다시 기차역으로 가서 탐리에 가자는 것이다. 거기는 왜 가느냐고 하니 거기 자기형의 처갓집이 있는데 사과를 재배하니 가서 얻어먹자는 것이다. 할 수 없이 또 따라갔다. 갔더니 친구 형수님의 동생이라면서 처녀 한 사람이 있었는데 친구 2명을 데리고 와서 사과내기 화투를 치자는 것이었다. 난생 처음 여자들과 사과내기 화투를 쳤는데 우리가 져서 사과를 사러 가게 되었다. 그런데 이 친구가 가게로 가지 않고 사과밭으로 갔었다. 말하자면 사과 서리를 간 것이다.
친구가 전에부터 보아 둔 사과밭이 있는데 주인이 늙어서 들켜도 달아나면 안 붙들린다는 것이다. 참으로 황당한 이야기지만 이미 세 사람은 같은 길을 가고 있었다. 강을 건너 가니 정말 울타리가 허술한 사과밭이 있었다. 울타리가 허술하여 그냥 들어갈 수 있었다. 들어가면서 하는 말이 사과를 돌려서 따야 소리가 안 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천천히 한 개씩 돌려서 땄다. 그런데 몇 개를 따서 가자고 하니 이 친구가 잠간 기다리라고 하더니만 밭둑으로 나가서 조그만 마대(물건 담는 포대)를 세 개 가지고 와서 한 사람이 한 마대씩 따라는 것이다.
사과 몇 개면 먹을 수 있을 터인데...
내가 부의장 출마를 하였으나 자금이 없어서 이 사과를 팔아서 선거비용으로 써야 된다는 것이다. 참으로 황당한 이야기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조용히 한 개씩 돌려가면서 땄는데 그렇게 천천히 따서는 어느 천년에 한 마대를 채우는가? 주인도 없는 것 같아서 그냥 잡아당기니 가지가 흔들려서 툭툭 떨어지는 소리가 나도 주인은 오지 않아서 계속 한 마대를 따서 밭둑으로 나가니 이게 웬 일인가?
밭둑에는 더 큰 마대를 갖다 놓았었다. 거기에 담아놓고 다시 가서 따라는 것이었다.
다시 들어가서 한 마대씩 따서 나오니 달도 없는 밤이라 캄캄하여 길도 찾을 수 없었다. 겨우 길을 찾아 막 가려고 하는데 강 건너서 인기척이 났다. 주인이 오는가 싶어서 밭둑에 엎드려 있는데 가만히 보니 화투를 쳤던 처녀들이었다.
사과 사러 간 사람들이 오지 않으니 찾아 나선 것이었다. 친구는 잘 되었단다. 사과를 가지고 가기 힘드니 지게를 가지고 오라고 부탁을 하였다. 처녀가 가서 지게를 가지고 오니 제일 큰 마대를 지게에 친구가 짊어지고 작은 마대 세 개는 아가씨 한 사람이 한 개씩 이고 돌아가게 되었는데 돌아가는 길이 파출소 앞을 지나게 되었다
겁이 덜컥 났다. 밤중인데 사과를 그렇게 많이 가지고 가면 의심을 받을 것 같아 아주 조용히 갔는데 무사히 파출소 앞을 지날 수 있었다. 친구의 형님 처가댁에 가서 사과를 내어놓으니 방이 가득하였다. 처녀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사과를 운반도 못할 번 하였다. 어쨋든 사과를 내어놓고 좋은 것과 여진 것을 골라서 두 가지로 나누어 마대에 다시 담았다. 다음날 아침 통학열차(일요일이라도 열차는 다님)를 타러 가는데 교복 입은 학생이 가지고 가면 의심을 받을 것 같아 그 처녀들이 기차역까지 가져다가 기차에 실어주었다. 우리는 먼 곳에서 어느 객실에 싣는가만 보았다. 그런데 기차역에 경찰관이 총을 메고 나와 있었다. 도둑놈이 제발 저리다고...혹시 사과밭 주인이 신고를 해서 경찰관이 나오지 않았나 매우 걱정 되었으나 우리는 세 사람이 같이 다니지 않고 서로 떨어져서 기차를 타서 만나기로 하였다.
기차표도 사지 않고...탐리역에서 사면 돈이 많으니까 안동역 가까이가서 기차가 서면 빨리 가서 사려고...
그러나 운산역(내가 통학하는 역)에 내리자마자 기차역으로 달려가서 표를 사려고 하였으나 표를 사기전에 기차가 출발한다는 신호기가 보여서 표를 사지 못하고 기차에 올라탔다. 타니 마침 같은 역에서 통학하는 다른 반 친구(권영길)를 만나서 다행이었다. 그 친구는 패스라는 기차를 탈 때 사용하는 카드를 가지고 있어서 집찰구(기차표 내고 나가는 곳)에서 그 친구가 나가서 사과 마대를 받아주고 우리 셋은 표가 없으니 각자 기술대로 나가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는데 모두가 무사히 빠져나와서 만났다.
그 친구는 보내고 이제 한 숨을 돌리고 짐군(당시는 지게로 짐을 옮겨주고 돈을 받는 사람)을 사서 청과상회(역에서 100미터정도의 거리)에 가서 팔고 점심은 난생 처음 중국집에 가서 자장면을 사서 먹었다.
그날 오후부터 부위원장 출마한다는 인쇄물을 인쇄하고 A자 세움판도 만들었다. 선거운동은 이길영이라는 친구 한명을 더하여 넷이서 주로 하고 다른 반 친구들도 도와주었다.
그런데 사과를 훔쳐서 선거비용으로 한 이 친구가 당선이 되었다.
지난(2011년) 우리 동기 전국모임에 갔더니 이 친구가 다른 세상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내 짝이었던 김국태는 40대 초반에 교감이 되어서인지 일찍이 저 세상으로 갔고 이 길영이는 충청북도 충주 어디에 산다는데 졸업하고는 한 번도 보지 못하였다. 한 번 보고 싶은데...
그리고 보니 내하고 친하였던 친구는 모두 유명을 달리 한 것 같다.
면내에서 같이 통학하던 남동완이란 친구는 집사람도 아는데 5년전에 이사를 하다가 지붕에서 떨어져서 유명을 달리하였으니 내가 동기회에 잘 안 가는 이유도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친구들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