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텔레비젼의 채널을 이리저리 틀다가 인간극장 재방송을 보는데
박누가. 외과의사가 필립핀 산골마을을 다니면서 치료하는 모습인데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운 분이었다.
환자 한 사람이 있어도 고물 자동차를 끌고 가고 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산골을 한 시간 반 이상 걸어서도 진료를 다니시는 모습이 요즈음 우리 의사들이 사직서를 댄다는 현실과는 너무나 거리가 있어서 인터넷에 찾아보았더니
아래와 같은 훌륭한 의사여쓴데 고인이 되셨다고 한다.
<아픈 만큼 사랑한다>는 한 선교사의 삶을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필리핀의 한국인 슈바이처’라 불린 고(故) 박누가 선교사는 30여 년 동안 버스 한 대로 필리핀 오지를 누비며 의료 봉사에 힘썼다. 빈민촌 사람들에게 ‘닥터 박’이라고 불리던 그는 그들의 희망이었다.
시한부의 삶을 선고받았음에도 자신이 아픈 만큼 환자를 더 잘 이해하게 되고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던 박 선교사, 그가 보여준 봉사와 헌신은 사랑 그 자체였다.
필리핀에 울리는 희망의 목소리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하나님이 보내신 분 같아요.”
-이시도르(필리핀 학생)-
“메디컬 체크!” 구수하고도 정겨운 목소리가 필리핀 오지 마을에 울려 퍼진다. 박 선교사는 마땅한 의료 시설이 없어 죽음이 일상이 돼 버린 이들을 위해 오늘도 발걸음을 뗀다. 그 목소리를 뒤로, 반가운 표정을 띤 필리핀 주민들이 하나둘 닥터 박을 맞이하기 시작한다. 그가 이번에 찾은 곳은 피나투보의 아이타족 마을. 아이타족 원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은 일교차가 심해 감기로도 목숨을 잃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들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더더욱 치료를 멈출 수 없다. 박 선교사는 능숙한 솜씨로 점검을 마치고 한국에서 직접 공수해 온 약과 비타민 등을 주민들에게 건넨다. 약을 잊지 말고 챙겨 드시라는 그의 말에는 진심 어린 걱정이 담겨있다. 닥터 박의 방문으로 천식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던 노인과, 아픈 아이를 바라보며 시련에 잠겨있던 아이 엄마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피어오른다. 그들에게 닥터 박은 의사 이상의 존재였다.
외과의사라는 안정적인 직업 아래 한국에서 보장된 삶을 누릴 수 있었던 그였다. 그가 필리핀에서 의료선교를 시작한 건 1989년. 우연한 기회로 방문하게 됐던 의료봉사에서 그는 사람들의 고통을 보았고, 그곳에 자신의 사명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는 루손섬 바기오 북부의 산악지대를 사역지로 택했다. 바기오에서 12시간 동안 비포장도로를 달려야 닿는 오지였다. 누구도 오지 않는 곳이라는 사실이 그를 붙잡았고, 이후 필리핀을 중심으로 동남아시아 오지만 찾아다니며 죽어가는 생명을 돕기 시작했다.
그가 간단한 질병으로도 목숨을 위협받는 필리핀 오지 마을에서 의료선교를 이어온 지도 어언 30년이다. 박 선교사는 정기 점검을 위해 아무리 먼 오지라도 꼭 방문했다. 그는 환자들을 직접 찾아가는 것은 물론, 2010년 필리핀에 누가선교병원을 세워 주민들을 대상으로 무료 의료 봉사를 진행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버스
“봉사도 즐기면서 해야 오래가요.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가는 마음으로 해야 오래가요.”
- 박누가 선교사 -
부르릉, 시동 걸리는 소리만 벌써 열댓 번째. 까맣게 타들어 가는 그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당최 버스의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갈 길이 삼 만리인데 버스가 마음처럼 움직여주지 않는다.시동이 정상적으로 걸려 주기만 해도 감사한 이 중고 버스의 이름은 ‘메디컬 버스’. 버스에는 ‘Medical Mission’이라는 글자가 큼지막이 쓰여있다. 박 선교사는 의료사각지대의 사람들을 찾아가기 위해 직접 버스 면허를 따고 중고 버스를 구입해 의료 버스로 개조했다. 사람들을 치료해줄 수 있는 공간뿐 아니라 잠자리까지 제공해주는 이 버스는 그의 보물 1호다.
박 선교사는 이 버스 한 대로 30여 년 동안 의료 봉사를 이어왔다. 그는 누가선교병원을 거점으로 메디컬 버스를 타고 50여 곳의 오지 마을을 다니며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찾아갔다. 그는 메디컬 버스를 통해 현장에서 외과 수술을 진행하기도 했다.버스가 오래돼 자주 고장이 나도 그는 버스 운전대를 잡을 때면 언제나 흥겨운 콧노래를 불렀다.
아플수록 사랑하게 하소서
“한국에서 유능한 의사가 되었다면 돈은 많이 벌었겠지만, 저의 건강이 이미 40대에 없어졌을 것입니다. 제가 환갑이 넘도록 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확신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종교를 떠나 진실입니다.”
- 박누가 선교사 -
박 선교사는 필리핀 오지를 돌아다니며 장티푸스, 콜레라, 뎅기열 등을 비롯한 10여 가지 질병을 앓았다. 병마가 그의 몸과 마음을 지치게 만드는 순간에도 그는 봉사를 멈추지 않았다. 급기야 1992년 췌장암이 발병했지만 다행히 초기에 발견해 치료가 가능했다. 그 후 12년 뒤인 2004년, 위암이 발병했지만 그는 낙심하지 않았다. 치료 후 다시 선교지로 돌아갔지만 말기 암이 쉽게 완치될 리 없었고, 계속되는 봉사로 몸이 혹사되는 가운데 회복은 더디었다. 2009년엔 간경화에 당뇨까지 더해졌다. 2016년 5월 위암은 결국 재발했지만 더해지는 고통 가운데에도 그는 감사드렸다. ‘아파 보니 환자를 더 잘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 그가 삶에서 드리는 감사를 증거하는 한 마디였다.
출처 : 한동신문(https://www.hgu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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