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세상 촌정필담...(미술에 관계 된 글)을 열시히 읽었더니
2022년 8월 12일 '설강 김영자 지음 서예인생사를 보내 주겠다는 댓글을 보았다.
나는 설강이 누구인지도 몰랐고 책 내용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면서 보내주면 고맙겠다는 댓글을 썼더니
8월 18일에 책 한 권이 도착하였는데
제목이 서예 인생사.였다.
이동민씨와는 어떤 관계이기에 남의 책을 마음대로 보내 주는가 하였더니 책을 읽어보니 부부지간이었다.
이 분은 도이석선생을 시작으로. 왕철. 초정. 근원 등 여러선생님께 사사를 하였고 현대서예를 여러 실험을 한 분이었다.
75세인데 공부한 시대를 보면 나도 한창 서예공부를 할 때인 것 같았다. 동 시대의 서예인이었는데 전혀 몰랐었다.
내가 90년 이후는 서예계에 얼굴을 내밀지 않아서일 것 같다.
도이석선생에게는 입문을 하였고
왕철선생에게는 구성궁예천명을
초정선생에게는 5체를
근원선생에게는 현대서예를
사사 한 것 같다.
전시회도 여러곳.(대구. 서울. 불란서 등)에소 한 모양이다.
어느 계파에도 얼매이지않다보니 자유분방한 활동을 하신 모양이다.
그렇다 서예계의 고질병도 여과없이 써놓았다.
"국전을 장악하기 위한 계파 간의 치열한 다툼이 있었다.
광복 이후에는 손재형 게열이 국전을 장악했고 . 김응현 계열은 그 권력에 도전하였습니다.. 명분은 서예의 에술미와 서법론이 다툰 것이지만 사실은 국전장악의 싸움이었다"
1990년에 접어들면서 초정 선생이 동방연서회 회장이 되면서 국전도 장악 했습니다.
대부분의 서예인은 학원으로 생계 수단을 삼습니다. 대학에 서예과정이 없었던 시절이라 국전의 입, 특선이 유일한 경력이었습니다.. 국전의 특,입선의 경력으로 학원의 수강비를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1989년 원광대 서예학과 개설
1992년 계명대학에 서예학과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준비가 없었고 서에교육을 담당할 교수진 확보도 어려웠습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만들어 놓으니 사상누각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사제관계는 학문으로 이루어져야지 주종관계여서는 안된다.
대학 서예과의 문제점은 졸업을 하여도 마땅한 진로가 없다.
서예학원이 길이라면 길이었다.
서예학원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서예과 졸업보다 국전추천작가가 더 요긴했다.
학생들은 과외수업하듯이 학교밖에서 도제수업방식으로 수업을 또 받았습니다.
1990년대 근대서예라는 말이 도입되었다.
서예의 기초를 다지는 것과 국전에 입선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서예가 고유의 형식에서 벗어나 흑백에서 색채로 틀에서 자유분방함으로 평면에서 입체로 특수계층의 문화에서
대중문화로 모습을 바꾸었으며 이러한 움직임은 회화와 설치 퍼포먼스, 캘리그래피 등의 형태로 나타났다.
또한 대중들이 이해하지 못한 한자중심의 서예를 대중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의 길을 찾자는 것이다.
그런 시도를 하는 서예를 현대서예라고 한다.
서법에 맞추어 글을 쓰려면 많은 시간이 소요되므로 실용성이 떨어집니다.
시간을 단축하려는 목적으로 글씨 쓰는 법칙을 느슨하게 풀어주면서 전서에서 에서로 나아갑니다.
글씨를 쓴다는 것은 법칙에 맞게 쓴다는 것이고 결국 기능의 범주안에 갇히게 됩니다.
기능이 강조되면 예술성을 평가하기가 애매합니다.
왕희지. 헌지 부자가 서예사에 이름을 남기는 이유가 서예를 에술의 차원으로 승격 시킨 가닭이다.
중국에서는 서법이라 칭합니다.
서법이라는 명칭이 의미하는 것은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글씨를 필법에 맞도록 정확하게 쓰자는 말입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서도라는명칭이 일반화 되었습니다. 또한 마음수양이란 뜻이 강합니다.
광복후 서예라고 명칭을 바꾸었습니다. 문자의 개념에서 예술의 개념으로 바뀐 것입니다.
예전에는 초대작가가 되었다면 대구의 서예계가 떠들석하였는데. 지금은 바스락 거리는 소리도 없이 조용해졌다는 것이 달라진 것입니다.
공모전에 입상을 하면 성취감 때문에 계속 할 수 있다고 설득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무슨 성취감요. 내가 즐거워서 하는 것이고 싫어지면 그만두면 되지요.
취근에는 아예 초데작가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1932년을 마지막으로 조선미전에서 書部가 빠졌다.
일본에서는 서예를 예술이 아닌 정신 수양의 방법으로 생각하고 書道라고 개념정리를 하였다.
광복이 되자 한국 서예계는 재빠르게 書道를 書藝라 바꾸고 국전의 한 장르로 편입시켰다.
중국은 명칭도 書法이라고 하여 문자로 다룹니다.
대만도 書를 국어과에 포함시켜서 문자의 의미로 다루고 있다.
한국만 예술 장르로 보니 독특하다고 하겠다.
예술이 인생에 봉사해야지 어떻게 인생이 예술에 봉사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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