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군 생활
(2) 군 생활
9월부터 10월까지 2개월동안 고되게 훈련을 받았다.
훈련중에 엉덩이를 빳다(침대 마후라,라고 하는 몽둥이)로 맞기도 하고 밤에는 내무반장들의 허락을 받고 비공식으로 철조망에 가서 떡을 사서 먹기도 하였다. 철조망은 군 기지의 경게선이 철조망으로 되어있는데 얼굴은 서로 볼수 있고 손은 넣을 수 있으니 떡 장사들이 철조망 밖에서 팔고 우리는 안에서 돈주고 떡을 받았다.)
입교(공군은 입소라 하지 않고 입교라고 한다. 공군 훈련소라고 하지 하고 공군기술학교라고 하는가...)
할 대 가지고 있던 돈은 모두 압수하여 군에서 보관하고 있었으나
떡을 사멱으라고 허락하는 날은 떡 살 돈을 다시 돌려 주었다.
허락하지 않는 날도 있었는데 그런 날 떡을 사 먹으로 간 친구가
달아나서 내무반으로 왔지만 군복을 입었으니 누가 누구인지 몰라서 우리 훈련병 전체가 연병장에 팬티만 입은 채로 모여서 엉덩이를 얻어맞기도 하였다.
어느 날은 우리 구대(학교로 말하면 반)만 밤중에 매를 맞는데
빳다라는 것을 양동이에 물을 채워서 담그어 놓았다가 때리는데
물방울이 튕겨 나오는 것을 보니 많이 아플 것 같아서
맞지도 않고 울상을 하고 맞은 시늉을 하면서 엉덩이에 손을 대고
맞은 사람이 있는쪽으로 갔더니 그냥 지나갔다.
내가 워낙 약체라서 알고도 모른척 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군기가 그 당시만 하여도 공군은 크게 엄하지가 않았던 것 같았지만 거의 매일 기압을 받았다. 매일 긴장을 하라고 일부러 기압을 주는 모양이다. 가만히 두면 고향생각 사회에 있었던 생각을 한다고...
공군도 이렇게 기압을 많이 받는데 육군은 정말 힘들었을 것 같았다.
그러면서 훈련 1개월만에 우리 구대의 대표로 칼빙소총(육군은 엠1이라는 무거운 총으로 훈련) 총기분해결합대회에 나가려고 연습할 때는 힘든 훈련을 안 받았다. 힘든 훈련 받기 싫어서 대표를 한 것 같다.
훈련 1개월을 마치니 가족의 면회가 허락되어서 집으로 연락을 하라고 하였으나 나는 아버지나 어머님이 오실 형편이 못되어서
서울있는 동생(상탁)에게 연락하였더니 면회하는 날 음식을 푸짐하게 가지고 왔었다.
면회를 오지 않는 친구도 몇몇 있었는데 면회 온 친구들이 면회실로 불러내어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그날 저녁에는 반드시 배탈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조교(훈련을 도와주는 사병, 훈련은 장교가 가르침)가 소화재를 준비해 두었다가
그런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날은 면회오는 가족들이 내무반을 본다고 얼마나 청소를 시키는지 침대와 사물함은 물을 뿌려서 각을 세워서 정리정돈하였다.
청소를 하면서 이렇게 힘드는데 차라리 면회를 하지 말았으면 하는 친구도 있었다.
2개월 후 수료 훈련할 때는 최전방을 주시하는 첨병이 되어 살피면서 뒤에 오는 친구들에게 앞에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알리면서 70리 행군을 하기도 하였다.
수료하기 며칠 전 특기배정을 하는데 인사과를 희망할 사람은 나오라 하더니 갱지 8절지 1장을 주면서 입교해서 수료할 때까지의 소감을 적되 자기가 아는 대로 한자로 쓰라고 하였다.
나는 내무반에서 자기집으로 편지를 보낼 때 동료들의 주소를 한자로 대필해(집주소를 당시는 한자로 쓰면 더 돋보여서) 주기도 하여서 한자는 어느정도 자신이 있어서 나가서 써 내었다.
훈련을 마치고 수료할 때 특과를 배정 받는데...
정비반. 현병대. 통신반, 급식반 위생병....등 배속된 이름을 부르는데 내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마지막에 K-2 5공수전대본부 인사과 오상인이라고 하여서 희망대로 배속이 된 줄 알았다.
내가 인사과를 희망하였을 때 내무반장이 너 빽 있느냐고 물어서 아무 빽도 없다고 하니 그럼 공군에 아는 사람 있느냐고 하기에 그것도 없다고 하니 야 이놈아 간도 크다
너 인사과는 안돼,하여서 포기하였는데...
대구 5공수전대 전대본부 인사과로 배속을 받아 군용열차를 타고 대구역에 내리니(당시는 동대구역은 없었다)
난 부대에 혼자 배속 받았지만 정비반 같은 경우는 종이 한 장에 누구외 몇병 이렇게 되었으니 모두 같이 행동을 하여야 하는데
서로 떨어져서 내리니 이름을 부르고 떠들썩 하였다.
신임은 옷가지를 넣은 백이란 것이 커다란 자루 같아서 그걸 울려메고 내리니 현병대(당시는 역마다 헌병이 있어서 군인들이 차 타는 것을 관리하였다.)가 보니 신병백을 울려메고 좌왕우왕 하는 모습이 눈에 거슬리는지 모두 헌병에게 불려가서 얼차려를 몇 번 하고 나서 일열로 줄을 세워놓고 군부대 차를 불러서 함께 태워주어서 공군부대로 들어갔다.
난 혼자다 보니 바로 공수부태 인사과 사무실 앞에 내려주었다.
인사과장에 배속을 명 받았다고 인사를 하니 선배에게 데리고 내무반으로 가라는 지시를 하여서 내무반에 가서 짐을 풀었다.
그날 저녁 병장이 자기는 며칠후에 제대한다고 자기의 헌옷과
내 새옷을 교환하자고 하였다.
그러면서 너도 제대힐 때 다시 후배에게 새 것으로 교환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배속 받을 때 여름정복 두 벌 겨울 정복 두 벌을 받아왔느데 11월이라 동복을 입을 때인데 동복 한 벌은 빼앗기다 싶이 하였다. (정복-외출이나 휴가 나올 때만 입는 곳)
공군 정복은 사병이라도 넥타이까지 맨다.
그래서 훈련 받을 떼 넥타이 매는 신사군인이라가 까지 알려주었다
타 군인 위관급에게는 인사 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긍지를 심어주기도 하였다.
근무할 때는 작업복을 입고 하였다.
선배들이 이등병으로 인사과에 근무하는 것은 위신문제라면서 1등병 계급장을 달아 주어서 2등병이면서 1등병 계급장을 미리 달고 근무하였다.
사무실에는 군속이라고 하는 민간인도 있었다.
타자수가 2명. 각자사(제도(도표그리는)가 1명
과장(대위) 선배(병장) 한 사람, 나(이등병)
그러니 민간인 3명 군인 3명 6명이 근무하는 조그만 사무실이었다.
공수부대 인사과이다 보니 다른 부대나 타(육군이 주로) 군인도 가끔씩 찾아오는 곳이다.
공수부대란 군의 공수(하늘 수송)를 당당하다보니 공수하는 비행기가 있어서 비행기를 타러 오는 타 군인도 있었다.
주로 육군인데 장교들만 왔다.
수송기란 물건만 운반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타는 곳도 있었기에 휴가를 가는 육군장교나 출장가는 군인들이 찾아오곤 하였다.
그런데 장교가 1등병 보고 예를 하는 곳이다.
왜냐하면 말을 함부로 하면 비행기 타는 법을 가르쳐주지마라고 선배들이 가르쳐 주었다.
그래서인지 실제로 위관급은 오면 예를 하였으나 령관급 이상은 타군이라도 말을 낮추어 하였다.
군 입대후 훈련 2개월 부대근무 1개월 3개월만에 휴가를 갔다.
첫 휴가는 어머니가 버선발로 뛰어나온다고 하였는데 어머니가 삽작까지 나오셔서 반갑게 맞이하여주셨다.
육군은 입대후 1년이 되어야 첫 휴가를 나온다고 하던 시대인데
난 3개월만에 휴가를 갔으니 동네분들이 공군이 좋기는 좋은 모양이다라고들 말하였다.
아마 우리동네에서는 공군에 입대한 한 사람도 내가 처음인 듯 하다.
그것도 내가 원해서 휴가 간 것이 아니고 군량미 휴가라고 해서 서류는 군에서 근무하고 가라(가짜)휴가증을 만들어서 휴가를 보내면 군량미는 남아있으니 이 쌀을 장교들이 나누어 가졌다.
얼마나 못 살았으면 가짜로 휴가를 보내고 서류상은 근무하는것처럼 꾸며서 그 남은 쌀을 장교들이 나누여 가졌을까...
장교들이 나누어 가진 것을 어떻게 알았느냐고
내 손으로 소위는 몇 되 중위는 몇되 대위는 몇되
인사과장이 나보고 시켰으니까...
장교명단을 나에게 주는데 명단에 몇되 몇되라고 표시가 되어 있었다.
첫 휴가를 하고 나서는 한 달에 한번은 집에 다녀 온 것 같다.
내가 인사과에 근무하다보니 휴가증과 외출증을 관리하게 되어서
서류상은 외출증을 끊어가지고 가짜로 휴가증을 만들어서 집에를 갔다. 몇 번 가니까 어머니가 너무 자주 온다고 하였다.